오피니언 사설

국정 안정의 소명 받은 황교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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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헌재의 탄핵 결정까지 과도기 국정은 황교안 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맡게 된다. 황 권한대행은 어제 담화에서 “한시라도 국정 표류와 공백이 생겨선 안 된다”며 공직자의 소명의식과 헌신을 강조했다.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는 담화 대로 최우선 과제는 국민의 안전이다. 어제 전군에 대한 감시·경계 태세 강화에 이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한 북한 동태 점검과 비상 플랜 마련, 국제사회와의 북핵 대응 공조가 이어져야 한다.

 수출 부진에 내수 경기 악화로 빨간 등이 켜진 경제위기의 진화도 화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 경제부총리 등 컨트롤 타워를 조속히 정리, 구축해 주어야 한다. 여야 정치권과 충분히 협의해 38일째 이어져 온 유일호 현 경제부총리와 임종룡 내정자의 불편한 동거를 어떤 식으로든 해소해야 한다.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통해 국가 신인도 제고에 힘쓰겠다는 담화대로 안보·경제 측면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 않도록 해달라.

 무엇보다 황 대행의 국정은 의회, 특히 과반 야권과의 협치와 소통 속에 이뤄져야 한다. 야당은 통진당 해산을 주도했던 공안통 검사 출신의 황 대행에게 거부 반응을 보여왔다. 황 대행의 행보를 마뜩잖은 눈길로 쳐다 볼 것이다. 취약한 그의 카리스마와 권위에 더해 의회와 엇박자가 잦을 경우 ‘직무정지 대통령’과 ‘불구 대행’이란 최악의 벼랑을 맞을 수 있다. 다행히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와 정부의 정책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부지런히 열린 마음과 잰 걸음으로 의회와 소통해 국정의 공통 분모를 찾아야 한다.

   헌재의 ‘탄핵’ 결정 뒤 두 달 내 대선이 치러지는 경우 황 대행은 선거 관리와 차기 정권으로의 순조로운 국정 이양이란 짐도 떠안게 된다. 탄핵 소추 이후 여야의 관심은 신속히 차기 대선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다. 만약 궐위로 인해 차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대통령직인수위가 생략된 채 바로 당선자가 취임하게 되어 있다. 공정한 대선 관리와 함께 과도기 국정 공백을 성공적으로 메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 기간 동안 고건 대행은 노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로 키’ 행보를 했었다. 탄핵이 기각될 가능성이 높았고, 청와대 386 참모들의 은근한 견제도 작동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헌재 심리 기간이 최장 6개월로 예측하기 어려운 터에 이 같은 전례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권한대행의 법률적 한계 내에서 안정적 국정 관리를 하되 대통령 눈치를 보며 좌고우면만 해선 곤란하다. 나라를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면 소신껏 추진하는 담대함도 겸비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