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신약 건보 적용 걸리는 기간…한국 601일 OECD 평균은 245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국의 바이오산업이 빈약한 건 신약 가치를 높게 쳐주지 않는 건강보험 약가(藥價) 제도와 무관치 않다.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복잡한 약가 결정 방식을 통해 건보 지원(등재) 의약품의 가격을 깎는다.

신약 저가 보급, 바이오 발전 막아
식약처, 세계 첫 허가 신약엔
보험 약가 우대하는 방안 검토

건보 재정의 적자를 피하기 위해 약가를 깎고, 한 번 정한 약가도 다양한 사후 인하 제도를 통해 추가로 깎는다. 약이 좋아 많이 팔리면 보험약가를 더 깎는다. 신약의 혁신성을 인정받기 힘든 구조다.

이런 연유로 한국은 약값이 상당히 싼 나라로 유명해졌다. 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가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건강보험에 등재된 신약의 약가는 201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45% 수준이었다.

최근 4년간 특허 의약품의 약가 인하폭도 평균 17%로 OECD 평균(9%)의 약 2배 수준이었다. 싼 약값의 혜택은 한국 소비자가 봤다. 대신 그만큼 제약 산업은 뒤처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내 제약사도 별 불만이 없었다. 지난 수십년간 변변한 신약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에 눈을 뜨면서 건강보험의 적자 관리 중심의 약가 제도가 부메랑이 되고 있다. 예컨대 보령제약의 고혈압 신약 카나브는 신약인데도 국내에서 약값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해외 수출에서도 손해를 봤다.

혁신 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도 낮다. 항암 신약이 국내에서 보험 등재까지 걸리는 기간은 601일로 OECD 국가 평균(245일)의 2.5배 수준이다. 보험 등재가 안 되면 환자들은 약을 비싸게 처방(비급여)받아야 한다.

배성윤 인제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해외 신약을 국내에 값싸게 보급하는 게 정부 역할이던 시절의 규제가 이젠 바이오제약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한시적·조건부 등재 같은 여러 문턱을 두고 절충하는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① 삼성바이오 같은 R&D·공장 유치 땐 일자리 1만3000개
② 벤처가 개발, 제약사 임상…해외 수출 ‘성공 공식’ 만들자
③ ‘1g에 24억’…신약 시장 집어삼키는 중국



보건복지부도 논란 많은 약가 제도의 개선을 검토 중이다. 현재로선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한 신약의 경우 보험 약가를 우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국내 업체가 개발한 신약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큰 잣대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는 ‘이중 잣대’에 실망하는 분위기다. 외국계 제약사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혜택을 볼 것”이라며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글로벌 신약은 일단 보험에 등재하고 수익의 일정 부분을 제약사가 건보에 되돌려주도록 하는 방법이 낫다”고 주장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