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테러 현장 가보니…'침착한 대통령' vs. '배짱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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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올랜도 잔디 광장에서 시민들이 총기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올랜도=채병건 특파원]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테러를 겪은 올랜도. 15일 오전(현지시간) 도심의 오렌지카운티 청사 주차장에서 만난 앤서니 페라리는 “이렇게 위험한데 즉흥적인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겠는가”라며 “나라면 경험을 갖춘 침착한 대통령(힐러리 클린턴)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세 살배기 우리 아들처럼 행동하는 트럼프에게 테러 대책을 세우게 할 수는 없다”고도 말했다.

청사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주택가 인근의 식당 골든 코럴. 짐심 시간에 경로 할인을 해줘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부인과 함께 샐러드를 먹고 있던 밥 모우(84)는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강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일미군으로 복무하며 한국을 자주 찾았던 그는 아직도 영등포를 기억했다. 모우는 “트럼프는 말이 너무 많지만 해야 할 일은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총기 테러를 겪은 올랜도는 위기과 고통을 극복하자는 데선 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음 대통령을 놓곤 동상이몽의 반응이 나온다. 올랜도는 최악의 테러가 미국 대선에 미칠 영향을 짐작하게 하는 축소판이 될 수 있다.

CBS방송이 테러 이후인 13∼1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테러에 대한 트럼프의 대응을 놓고 51%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25%에 불과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ABC방송이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8∼12일)는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도가 한 달 전의 60%에서 70%로 상승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지지층은 테러 불안감에 속으로 결집하고 있었다. 백인 여성인 수 비숍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무슬림에 대한 공포가 늘었다”며 “내심은 트럼프로 가는 이들이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숍은 “오바마 대통령은 말은 잘하지만 여론에 잘 보이려고만 한다”며 “하지만 트럼프는 비난을 의식하지 않고 할 말을 하니 트럼프야말로 포퓰리스트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올랜도 외곽 발렌시아대에선 총기 테러로 숨진 학생 7명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을 지나던 학생 조지 발레스(23)는 “테러가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 같다”며 “이슬람국가(IS)와 싸우려면 트럼프처럼 배짱이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테러 불안감이 다른 한쪽에선 트럼프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오렌지카운티 공무원인 흑인 헤이스팅스는 “이럴 땐 성숙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트럼프는 통합을 이끌어낼 사람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테러 희생자 추모소에서 만난 흑인 여성 앤젤라 존슨도 “트럼프는 침을 뱉듯이 내뱉는 자신의 말에 다른 이들이 얼마나 상처를 입는지 모르고 있다”며 “트럼프는 나를 지치고 힘들게 만든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하고 테러 극복을 지원하기 위해 16일 올랜도를 찾았다. 이를 앞두고도 서로 다른 얘기가 나왔다. 모우는 “테러는 이미 일어났는데 (이를 막지 못한 대통령이) 이곳을 왜 오나”라며 “오바마나 클린턴이나 웃기는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발렌시아대 추모 행사에 참석한 잭 로저스(60)는 “대통령이라면 참극의 장소를 찾을 자격이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하러 오는 게 아니라 희생자 유족을 만나러 오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테러를 막으려면 트럼프로는 안 된다. 외치의 경험을 갖춘 클린턴이 낫다”는 클린턴 지지자였다. 테러 충격을 겪은 올랜도의 표심은 클린턴과 트럼프 중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건 어떻게 하나 된 미국을 만들지가 당면 과제임을 예고했다.

올랜도=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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