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조기 집행, 시기 분산 … 연말 보도블록 파헤치기 줄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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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털 사이트에서 ‘연말 보도블록 교체’라는 검색어를 치면 “보도블록 교체하는 걸 보니 연말이” “ 구청 돈이 남아 도나 보네요” 등의 글이 뜬다. 연말이면 반복되는 지방자치단체의 보도블록 교체 공사를 꼬집는 내용이다.

대구시, 최근 3년 간 158만 장 교체
세금 낭비 오해 없애려 4~9월 집중
겨울철에 몰리던 공사 18건 → 5건

 대구는 어떨까. 지난 14일 대구시 달서구 죽전네거리~두류네거리~범어네거리를 3시간 동안 둘러봤지만 보도블록 공사 현장은 찾기 어려웠다. 50대 택시기사는 “하루 12시간을 다니지만 최근엔 이상하게 보도블록 교체 공사가 잘 안보인다”고 말했다.

 대구시내 8개 구·군의 최근 3년간 보도블록 교체 공사 현황에 대한 대구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말 보도블록 교체 공사는 지난해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2013년 10~12월엔 1만4734㎡에 18건(8억5000만원)의 공사가 한꺼번에 진행됐지만 지난해엔 9250㎡, 6건(5억8000만원)으로 줄었다. 올해는 더욱 줄어 2921㎡, 5건(1억1500만원)의 공사가 이달까지 진행됐을 뿐이다.

 공사는 대신 4~9월로 옮겨 집중돼 있었다. 2013년 4~9월 보도블록 교체 공사는 2만7819㎡에 26건(9억2000만원). 지난해엔 3만5263㎡, 25건(14억9000만원)으로 많아졌고 올해는 5만1141㎡, 44건(19억7000만원)으로 확 늘었다. 연말에 몰리던 공사가 일정이 당겨진 것이다. 손수정 대구시 도로과 보도블록 공사 담당은 “남은 예산을 연말에 몰아 보도블록을 교체한다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예산을 조기 집행한 결과”라고 말했다.

 보도블록 교체에 세금은 얼마나 쓰였을까. 대구의 보도블록 교체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었다. 공사 구간 1㎡에 들어가는 보도블록은 평균 11장.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2013년 한 해 대구에서 교체한 블록만 4만2500㎡, 46만7000장이다. 지난해엔 49만4000장, 올해는 62만6000장으로 더 늘었다. 3년간 블록을 바꾸는 데 쓴 세금이 무려 60억3000만원에 이른다.

 보도블록을 가장 많이 교체한 곳은 동구였다. 2013년부터 이달까지 6만7627㎡, 67건을 진행했다. 블록 개수는 74만3000장이다. 달서구와 남구가 각각 3만8881㎡ 15건과 1만9385㎡ 21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에 비해 수성구는 최근 3년간 한 건의 공사(4810㎡)가 전부다. 이윤한 수성구청 도로관리팀장은 “불편하다는 민원이 들어올 때 현장에 나가 교체 대신 보수 위주로 보도블록을 관리한다”며 “쓸 만한 보도블록은 교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체가 들쑥날쑥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로관리 규정 어디에도 보도블록을 언제, 어떨 때 교체하라는 규정이 없어서다. 지자체 공무원이 눈 짐작으로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끝이다. 보도블록으로 빠져나가는 세금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충남 천안시는 지난 3월 마구잡이식 보도블록 교체를 막기 위해 이력제를 도입했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파헤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설치 후 10년 미만의 블록은 교체하지 못하도록 했다. 블록을 언제 교체했는지를 볼 수 있는 이력카드도 만들었다. 타산지석이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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