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거제시에 없는 3가지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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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도시’인 경남 거제시에는 세 가지가 없다. 우선 시장실이 없다. 권민호(59) 거제시장은 2010년 7월 취임 후 본관 2층 시장실을 없앴다. 대신 1층 민원실 옆에 ‘열린 시장실’을 꾸몄다. 처음엔 직원도, 시민들도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가던 시민들이 “어, 시장님이시네”라며 기웃거리기 시작했고, 권 시장은 “커피 한 잔 하세요”라며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행정의 답은 현장에 있어요. 시청에서 시민들 목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곳이 민원실이라 여기로 시장실을 옮겼죠.” 지난 10월엔 열린 시장실에 ‘시민고충처리담당관실’이란 별도 조직을 만들고 접수된 민원을 즉시 처리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시장실을 옮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거제시는 전임 시장 3명이 모두 비리에 연루돼 검찰에 구속됐다. 꼭 집무실에서 비리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몰래 돈봉투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바꾸고 싶었다는 게 권 시장의 설명이다.

거제시엔 평상복을 입은 공무원도 없다. 시장을 비롯해 모든 직원이 이름표를 단 근무복을 입는다. 누구나 공무원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해 비리·부정을 저지를 여지를 없애려는 취지에서다. 처음엔 반발도 많았지만 직원들도 차츰 말과 몸가짐을 조심하게 됐다. 권 시장은 “근무복을 입으면 민원인을 친절하게 응대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정직과 청렴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권 시장은 관용차도 없다. 취임 후 5년간 택시로 출퇴근하다 지난해 말 사비로 경차를 구입했다. “시민 여론도 듣고 세금도 한 푼이라도 아끼자”는 생각에서였다. 출근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직원 전용 주차장이 꽉 차 주차할 곳을 못 찾아 애를 먹기도 한다.

권 시장은 어렵고 힘든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집 없는 사람들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취임 후 가장 공을 들인 것도 ‘반값 아파트’였다. 2010년 거제 아파트 분양가가 700만~800만원이었는데 절반 가격에 아파트를 지어 서민들에게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300만원대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사실상 땅을 공짜로 사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거제시가 특정 용지에 아파트를 신축하는 시행자에게 합법적으로 용도 변경을 해주고 용지 일부를 기부 채납받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실제로 거제시는 2013년 3월 지역 건설사인 평산산업㈜이 소유한 땅 15만1040㎡ 중 농림지 5만2803㎡를 용도 변경해주고 이 중 2만4093㎡를 기부 채납받았다. 이 과정에서 특혜 논란도 불거졌다. 경남도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부결되는 등 몇 차례 무산 위기도 맞았다. 그러다 지난해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반값 아파트는 진정한 서민 정책”이라며 적극 지원에 나서면서 극적으로 재추진됐다. 시는 이 터에 영구임대주택과 국민임대주택 등 총 575세대를 건립할 계획이다. 일부 땅에는 공무원 기숙사도 추진한다. 내년 초 공사에 들어가 2018년 완공한다.

권 시장은 “요즘 거제는 비상사태”라고 했다. 조선업 장기 불황에 악재까지 겹치면서 조선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거제상권이 급격히 침체되고 소비 심리마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 시장은 “전통시장과 대형매장의 매출이 20~25% 줄었다”며 “중소기업 이자 지원을 확대하고 거제사랑상품권 판매를 늘리는 등 모든 부서가 소상공인과 재래시장 상인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선 도전은 하지 않겠다. ‘머슴처럼 일한 청렴한 시장이었다’는 평가 속에 박수를 받으며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거제=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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