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내역도 안 보고 … 경찰, 사실상 수사 종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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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찰이 국가정보원 직원 임모(45)씨 사망사건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별다른 추가 수사 없이 1~2주 후 나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를 기다려 자살을 뜻하는 ‘질식사’로 나오면 공식적으로 수사를 종료하기로 했다.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는 20일 임씨의 사망 당일 행적을 발표했다. 폐쇄회로TV(CCTV)와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을 분석한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임씨는 사망한 지난 18일 오전 4시52분에 집에서 나왔고, 약 20분 뒤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담배 한 갑, 알루미늄 포일 도시락을 샀다. 알루미늄 포일은 번개탄 밑에 받쳐 놓았던 것이다. 임씨는 이어 오전 5시48분 한 수퍼마켓에 들러 신용카드로 번개탄 5개를 샀다.

 임씨의 빨간 마티즈 승용차는 수퍼마켓을 떠난 뒤 오전 6시22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의 한 야산 진입로 CCTV에 잡혔다. 임씨가 발견된 장소에서 1㎞쯤 떨어진 곳이었다. 그 후 임씨가 발견된 낮 12시까지 진입로에서 나오는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임씨가 사망 당일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수사를 총괄하는 경기경찰청 변창범 강력계장은 “행적 등 여러 정황상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확실하다”며 “부검에서 최종적으로 질식사가 확인되면 수사를 종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몇 가지 의문점을 놔둔 채 수사를 마무리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경찰은 임씨의 통화 내역을 조사하지 않고 “사고 당일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변창범 계장은 “다른 인물과의 연관성에 대해 수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통화 내역은 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이처럼 “다른 인물과의 연관성을 수사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공식 발표한 것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찰은 또 임씨가 숨진 채 발견된 곳에 제3자가 방문한 흔적이 있는지 파악하지 않았다. 발견 장소에서 1㎞ 떨어진 야산 진입로 CCTV 영상을 분석하면서도 “임씨의 차량이 다시 나왔는지만 봤을 뿐 다른 차량이 드나들었는지는 염두에 두고 보지 않았다”고 했다. 사망 전 제3의 인물과 접촉했을 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는 소리다.

 임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몰고 간 배경을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씨의 가족들이 경찰에서 “최근 업무적으로 힘들어 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바탕으로 한 견해다. 김석진 변호사는 “임씨가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았다면 협박이나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고, 모욕을 당했다면 모욕죄가 성립된다”며 “학교에서 왕따당한 학생이 자살해도 왕따 내용을 조사하는 만큼 이런 부분을 밝히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유서에 부당한 지시나 모욕 등을 암시한 부분이 나오지 않아 수사에 착수하기가 조심스러운 점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인=박수철·윤정민 기자 park.suche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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