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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경호 경찰관의 월급 값이라도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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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

총리 취재에는 명과 암이 있다. 가장 불편한 건 근접 경호다. 나는 새로운 부처를 맡게 되면 틈날 때마다 기관장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곤 한다. 그러면 다른 공무원들은 내가 장관과 친한 줄 알고 응대가 달라진다. 바싹 붙어 건네는 얘기는 종종 “점심 잘 드셨느냐” “요즘 날이 참 덥다” 같은 영양가 없는 내용이지만 대화를 듣지 못하는 관료들은 업무 비판이 아닌지 경계한다. 하지만 이런 비장의 무기를 총리에게는 써먹기가 어렵다. 근접 경호 경찰관들 때문에 일단 가까이 접근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용케 옆에 붙는 데 성공해도 뻔히 경호원들이 듣고 있는 데서 점심 메뉴 얘기를 꺼내기가 무안하다.

 제일 신기한 건 의전이다. 러시아워에 사이드카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 도심을 질주하는 경험은 총리 취재 기자가 아니면 하기 어렵다. 총리 차량을 멈추지 않기 위해 사방의 신호등은 수동 조작된다. 도로마다 꼼짝없이 갇힌 차들이 길게 늘어선다. 뻥 뚫린 서울 도로가 얼마나 근사한지를 총리 덕분에 느껴본다.

 총리가 막강하다고 역설하는 주체 중엔 대한민국 헌법도 있다. 헌법은 총리가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86조 2항)고 주장한다. 통할은 ‘모두 거느려 다스린다’는 뜻이니 모든 부처를 호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과연 그런가?

 이완구 전 총리가 취임 직후 ‘부패와의 전면전’ 대국민 담화를 하자 검찰이 크게 화를 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총리 위상의 한 단면이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에 대해 수사지휘권이 있고 법무부는 총리의 통할 대상이지만 그건 그냥 법조문에 그렇게 씌어 있을 뿐이다.

 총리의 실제 파워가 어떤지는 검찰뿐 아니라 네티즌도 잘 안다. 요즘 인터넷에서 비아냥의 단골은 단연 총리다. 이 전 총리가 물러나게 되자 ‘다시 돌아온 정홍원 전 총리’ 등 각종 패러디가 난무하면서 정 전 총리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제왕적 대통령’과 ‘얼굴 마담 총리’의 민망한 공생이 빚어내는 일련의 해프닝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근본적으로는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28년 전에 설계한 현재의 권력 구조를 바꿀 때가 됐다. 그러나 개헌은 쉽지 않고 시간도 걸린다. 그때까지 총리의 위상은 총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얼굴 마담 총리에겐 경호원이 필요 없다. 북한인들 그런 총리를 테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바쁜 시민들의 발을 묶어둘 이유도 없다. 총리 얼굴 도장 찍는 것보단 서민들의 생업이 훨씬 중요하다. 새 총리는 최소한 경호 경찰관의 월급 값은 해야 한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김기춘 전 실장이 “총리님, 이번 일은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얘기할 때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며 딱 자르고 정반대로 행하는 정도의 강단이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다. 총리가 온갖 조롱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출발점도 거기다.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