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사주카페서 만난 2030 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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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춘은 불안을 바퀴 삼아 달리는 열차와도 같습니다. 취업·연애·결혼·승진 등이 뜻대로 되지 않아 불안한 청춘들이 새해 벽두부터 점집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청양(靑羊)의 해입니다. 청춘리포트는 양띠인 24세 취업준비생과 36세 직장인을 상대로 올해 운세를 봤습니다. 두 사람이 청춘 세대를 대표한다고 할 순 없겠지만, 취업과 승진 등 청춘의 전형적인 고민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한 해 운세가 관심을 끕니다.

 운세를 신뢰하는 것과는 별도로 청춘리포트는 각종 고민을 품고 점집을 찾아다니는 청춘의 불안한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실은 청춘리포트 역시 지난해 처음 기사를 내보낸 시점(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10분)을 출생 시간으로 삼아 타로·사주를 봤습니다. 다행히 청춘리포트의 올해 운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사주로 보면 “밝은 해가 떠 있는 운세로 재물운이 있다” 고 했습니다. 어쨌든 청춘리포트의 운세를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운세를 신뢰하든 하지 않든 말입니다. 2015년, 불안한 청춘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새해 첫 청춘리포트를 내보냅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올해 운세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조금만 헤엄쳐도 흙탕물이 나는 것처럼 청양의 해가 양띠에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운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굳어지는 표정은 어쩔 수 없다. 역술인 입 모양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자신의 운명을 메모지에 받아 적는 손놀림이 점점 빨라진다. 지난 5일 취재진과 함께 서울 역삼동 승원철학원에서 새해 운세를 본 양띠 직장인 고석진(36)씨와 취업준비생 이은진(24)씨의 모습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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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에게 점(占)은 익숙하다. 청춘리포트가 305명을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 ‘점집에 가 운세를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85명(60%)이나 됐다. 10명 중 6명이 점집에 가서 앞날을 물어본다는 얘기다. ‘신년 운세를 봤거나 계획이 있다’는 응답도 40%였다.

 2030세대는 왜 점집을 찾는 걸까. 역술가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20~30대는 가장 중요한 고객”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생의 굴곡이 가장 잦은 시기가 20~30대이기 때문”이라는 게 역술가들의 설명이다. 사주카페 ‘재미난조각가’ 유상준 대표는 “점집을 찾은 20~30대의 얘기를 듣다 보면 청춘 세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오후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 타로카드 집에도 연애운을 보러 온 20대 여성으로 북적였다. “남자친구와 자꾸 싸워서 왔다”는 이희원(23)씨도 타로카드 집을 찾았다. 이씨는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제3자에게 관계에 대한 조언을 듣는 것이 좋아 계속 찾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가인 신촌도 사정은 비슷했다. 신촌의 한 사주카페 역술인 최선애(55)씨는 “젊은 손님 100명 중 98명은 연애운을 보는데 최근에는 동성 커플도 점을 보러 온다”고 귀띔했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춘들도 점집을 기웃거린다. 청춘리포트팀의 설문조사에 응한 대학생 71.3%가 ‘취업에 대해 묻고 싶다’고 했다.

강남역 사주카페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김모(26·여)씨도 그랬다. 김씨는 “3, 9월이 취업운이 좋고 서비스업종에 지원하면 결과가 좋을 것 같다”는 역술가의 말을 듣고 표정이 밝아졌다.

 취업 운세를 보는 양상은 지역·시대별로 다르다. 사주카페 ‘성공하는 사주타로’ 이현주 대표는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최근에는 취업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이 늘었다”며 “‘원서를 20~30곳 넣었는데 다 떨어졌다’고 방법을 묻는데 어떻게 말해줄지 난감했다”고 말했다.

 점집을 찾는 30대 직장인들의 질문에는 우리 시대 미생(未生)들의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역술인들에 따르면 “승진하는 법을 알려 달라” “상사가 괴롭히는데 어떻게 하느냐” 등의 질문이 쏟아진다고 한다. 전세금 등 목돈이 들어갈 일이 많다 보니 재물운을 묻는 경우도 많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취업 등 본인의 의지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느끼는 젊은 세대들이 점을 통해서라도 위로를 받으려 한다”며 “점집을 찾는 젊은 세대가 많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안효성·김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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