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연상… 한국이름 로마자 표기|콜롬비아대「램지」교수 본지에 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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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 원고는 현재 미국콜럼버아대에서 동양언어를 강의하고 있는「램지」교수가 다년간 한국에 머무르면서 느낀 언어문화의 차이와 여기에서 파생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순한글로 쓴 것입니다「램지」교수는 이 글을 중앙일보 뉴욕지사를 통해 본사에 특별 기고했읍니다 <편집자성>
10여년전 어느날 서울에서 신문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애피소드를 발견하고 웃은 적이 있다. 「시내버스 속에서 한때의 여학생들이 한 남학생을 보고 킥킥 웃길래 왜 그런가 하고 보았더니 교복 가슴위에 달린 이름표에 한글로「임신중」이라고 쓰여 있었다」이외에도 「이상한」「공사중」같은 이름들도 열거돼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 역시 한바탕 크게 웃었지만 웃은 후에 내가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같은 이름을 한자로 써 붙이고 다닐 때나 선생님이 그 이름을 호명할 매는 그다지 웃지 않던 사람들이 왜 한글로 표기되면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로부터 1∼2년쯤 뒤의 일이다. 내게는 「송아무개」라는 친구가 있다. 내게는 그의 이름이 여느 한국이름과 같이 습관이 돼 있었다. 그런데 내 미국친구가 그의 이름을 보더니 『정말 동양적인 서정이 깃든 멋있는 이름이다』고 했다.「SONG」인즉 노래가 얼마나 동양적이고 신비한 이름이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몇 년전에 읽은 앞의 애피소드 생각이 났다. 다시 말해서 「송」이란 소리를 내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로마자를 통해서 본 후에야 그때한국에서 있었던 애피소드를 다시 내 경험으로 실감한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내 이름「로버트」를 애칭으로「BOB」이라고 부르신다. 그래서 나는 어느날 내 한국친구에게 메모를 쓰고「밤」이라고 사인했다. 그것을 본 그 친구는 그때 몹시 웃었으며 그때부터 먹는 밥과 내 이름을 연결시켜 놀려댔다.
갓 한글을 쓰기 시각하고 한국사회에 들어가서 받은 첫 봉변이었다.
그러나 내 이 경험은 내가 아는 미국여자친구의 경험에 비하면 약과다. 그 여자이름은「PAM」(PALEMA의 애칭)인데 그 여자는 자기이름을「뱀」이라고 썼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여자 이름이 뱀이라니, 쯧! 쯧!』하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그여자는 할수 없이 이름을「밤」으로 바꾸어 썼다. 그때부터는 또 어떤 반응이 있었겠는가.
한국인은 아마 많은 분들이 알파벳으로 표기한 자기 이름을 갖고 있을 것이다. 생각 나는 예 몇 가지를 들어보겠다.
「국」이란 성을 가진 사람은 별 생각 없이 로마자로「KOOK」으로 표기할 것이다.
보통사전에는 없으나 은어사전을 보면「KOOK」이란 단어에는「괴퍅한 사람」「좋아할 수 없는 사람」등의 뜻이 있다.
의사인 닥터「곽」의 경우를 보자. 그는 그의 성을 로마자로「QUACK」이라 쓴다.「닥터 QUACK」이란 단어에는「돌팔이의사」라는 듯이 담겨있다. 이쯤 되면 미국사회에서 그 의사의 인상은 엉망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비교적 흔한「문」이란 성을 보면 자신 있게「MOON」(달)으로 표기할 것이다. 통일교의 문선명씨는 이름 속의「MOON」과「SUN」(태양) 이라 표기한 단어 때문에 1960년대 미국 젊은 세대들에게 그의 이름은 더욱 신비한 마력을 주었다. 그러나 일반 미국인들은 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옛날에 서양사람들은 미친증세가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 사람은 달빚 속에서 춤을 추어서 그렇게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즈음도 서양사회에서는 미친 증세를 「LUNACY」라고 한다. 라틴어로「LUNA」는 달이란 뜻이다. 그리고 미친 사람을 학술어로「LUNATIC」즉 직역해서「달빛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통일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통일교도를 가리켜 「MOONIES」라고 부른 것은 그냥 닉네임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들을 비웃는 뜻으로 그런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이름의 로마자 표기가 미국사회에서 엉뚱한 이미지를 주는 예는 수없이 많다. 한국이 자랑하는 유명한 음악가 ××옥씨의 이름은「××UCK」으로 신문지상에 난 것을 보았다.「UCK」은 미국사람들에게는「엑!」다시 말하면 너무 싫어서 못참을 때, 혹은 구토증 나는 소리의 의성어다. 음악가로서 좋은 이름(로마자로 표기했을 때)이라 할 수 없겠다.
미국인에게 정말 큰 충격을 주는 이름은 지나치게 속된 뜻이 담긴 이름들이다. 예를 들자면 한국의 외교관 ×범석씨는 로마자로「BUM SUCK」으로 표기란 것을 보았고, 자주 내 미국친구들의 학제에 이 이름이 농담으로 오르는 것을 들었다. 너무나 속된 말이라서 미국에서 이런 뜻의 말을 활자화 하는 것이 거의 터부시됐던 시절도 있었다.
한국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는 외국인에게 주는 인상을 더욱 중요시 해야한다고 믿는다. 이왕 외국이름인데 발음은 조금 다를지라도 위신을 지키는게 더 낫지 않나 생각한다.
또 한국사람은 로마자로 무슨 이름을 표기 할때 비록 외국인이 틀리게 발음할지라도 미국말로 아무 뜻이 없는 것이나 아무것도 연상되지 않는 것으로 하는게 안전하다. 더 이상적인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해 잘 아는 외국인과 의논해서 결정하는 것이겠다. 이렇게 할 수 없는 분들의 경우에는「매퀸·라이샤워」씨의 로마자표기법을 사용하면 안전할 확률이 제일 크다. 이 로마자제도는 학술적이고 외국단어같은 느낌은 주지만 미국인에게 친밀은 해도 우스운 느낌이나 속된 느낌을 주는 단어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름을 로마자화할 때는 결국 외국인을 위한 것이니 무엇보다도 외국인의 감정을 고려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인은 세계 어느나라 사람보다도 이름에 관심이 많은 민족이다. 이름짓는 사람을 찾아가 돈을 주고 이름을 짓거나 아니면 이름을 아예 바꾸는 본들도 가끔 있다. 다만 그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도 그만큼 신중을 기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생각나는 속담이 있다.「이름이 고와야 듣기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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