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말은 짧게 뜻은 길게… 종장 뒤에 여운을-정완영(시조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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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자수만 맞는다고 다 시조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 그러면 시조가 되고 안 되는 사이  무엇인가?
피 살아 도는 정기 신열의 불꽃 바쳐/ 어김없는 시간의 맥이 뛰는 너울로/ 일어라 잠깨는 동녘에 예지의 햇살처럼.
『깃발』
내가 맡아보는 어느 월간지에 투고 해온 독자의 작품이다. 종장의 끝머리가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자수는 거의 맞아 있다. 그런데 시조가 왜 안 돼있는가? 첫째로 이 시는 시조로서의 내재율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글자 수를 토막내어 시조라는 글에 구겨 박고 있다.
구슬을 실에 꿰어 사름 사름 사려 담은 것이 아니라, 생나무 가지를 구겨 박듯 하는 무리를 범하고 있다.
바다가 무어냐고 아이들이 하도 묻기에/군산가는 길에 먼 수평을 가리키며/돛배와 갈매기와 아! 그 다음 아무 말도 못했다.
『바다』라는 어느 독자의 시다. 앞의 작품에 비해 이시는 얼마나·여유 있다. 앞의 작품이 배배 꾀어 있느가 비해 뒤의 작품은 얼마나 넉넉하게 사려 담겨져 있는가.
앞의 작품은 시조라는 틀에 갇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데 비해 뒤의 작품은 시조라는 자주 속에서 자적하게 소요하고 있다. 누가 시조는 틀이 좁아 답답하다 했는가?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주고/저만치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것네.
『어느 날』
김상옥 선생의 시다. 시제도 그저 『어느 날』이다. 다 자란 딸자식에게 구두 한 켤레를 지어 신겨놓고 저만치 걸어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회에 잠기는 어버이의 심정을 아무 구김살 없이 노래한 작품이다. 자식의 자라나는 그늘에 묻혀 절로 늙어 가는 어버이의 생애, 자식은 어쩌면 나를 비쳐 보는 거울이 된다. 이때 이 시인의 가슴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텅빈 항아리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것네> 이 종장 뒤에 깔린 말(여운)은 그 얼마인가? 언단의장이다. 구정물에 호박씨가 모두 떠오르듯 그렇게 말들이 의표에 다 떠올라야하는가, 수다를 떨어야하는가.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가는 듯 둘렸다.
『단란』
이영도 선생의 작품이다. 이 시인의 특기(시법)인 한점 군살을 붙이기를 용납 않는 깔끔하게 깎아 놓은 밤 같은 작품이다. 얼마나 진솔한 작품인가. 시가 왜 꼭 난해해야하는가. 왜 꼭 많은 어휘가 동원되고 윽박질러야 하는가. 시조는 민족시오, 국민시가다. 봄비에 옷이 젖듯 그렇게 읽는 이의 가슴에 타이르듯 젖어들게만 하면 된다. 말은 짧게 하고 뜻은 길게 하면 된다.
사흘 와 계시다가 말없이 돌아가시는 /아버님 모시 두루막 빛 바랜 흰 자락이/웬 일로 제 가슴속에 눈물로만 스밉니까.
어스름 짙어오는 아버님 서일 위에 /꽃으로 비춰 드릴게 마음 없사오매/생각은 무지개 되어 고향 길을 덮습니다.
손 내밀면 잡혀질 듯한 어릴제 시절이온데/할아버님 닮아 가는 아버님의 모습 뒤에/저 또한 그날 그 때의 아버님을 닮습니다.
『부자상』
졸시다. 제 시를 제가 무어라 이야기하기란 쑥스럽다. 다만 이 시도 생활시에 드는 것이라 여기에 실어 독자 여러분의 참고로 삼는다..
이상 몇 편의 작품울 보더라도 우리 생활주변에 얼마나 많은 시조의 소재들이 산재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아직은 시조인구의 연령층이 얕아(20∼30대)작품에서도 몸부림이 보이지만 장차의 날엔 온 계층의 국민들이 참여하여 백화가 만발할 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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