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 여덟 1번 얘기랑께' "그래도 난 2번 찍을건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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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재·보궐선거 전남 순천-곡성에선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와 새정치연합 서갑원 후보가 경합하고 있다. 15대 총선 전북 군산을에서 강현욱 전 의원이 신한국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후, 18년간 새누리당 쪽 후보가 호남에서 당선된 사례는 없다. 이 후보는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까.

전남 순천-곡성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7·30 재·보선을 앞둔 마지막 주말인 26일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순천시 조례동 호수공원 앞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왼쪽).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는 27일 순천시 풍덕동 아랫시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긍께, 이정현이 바람이 불어부렀습니다.”

 26일 오후 전남 순천시 버스터미널. 택시기사 권정오(56)씨의 첫마디였다. 권씨는 “시방 대통령 선거도 아니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월호가 웬말이여. (이정현 후보가) 공약이 활발혀요. 승객 열에 여덟이 1번 얘기랑께”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택시기사 박종택(56)씨도 “이번엔 누구라고 장담을 못하겄어. 한번 믿어는 보고 제대로 안 허믄 다음 선거 때 거석허자(바꾸자)는 게 민심이여”라고 거들었다. 또 다른 택시기사 이모(49)씨는 “그래도 2번 찍을 건디…”라 했지만 “야권 후보가 여럿이라 열심히 안 하믄 1번이 되불 것어”라고 말했다.

 이른바 ‘빅 마우스’라 할 수 있는 택시기사들이 전한 지역 분위기는 역대 선거와는 양상이 다를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가 맞붙은 전남 순천-곡성. 두말할 것 없이 새정치연합의 강세 지역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에 ‘화석’ 같은 지역은 더 이상 아니다. 통합진보당 김선동 전 의원이 이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를 꺾고 19대에도 국회의원을 지냈고, 지난 6·4 지방선거 땐 무소속 조충훈 시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박정규(54)씨는 “순천은 이제 2번 달고 나온다고 무조건 되는 데가 아니여”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미 ‘예산폭탄론’을 투척했다.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4년간의 예결특위 위원으로 활동하며 호남 예산 확보에 주력했던 일을 부각시켰다. ‘미치도록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현수막을 순천 곳곳에 걸어 일꾼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날 오후 6시 순천시 조례동 호수공원에서 열린 유세에서 이 후보는 “머슴같이 부려먹고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호소했다. 유세는 “순천대 의대를 반드시 만들겠다”거나 “율촌 공단 진입로 건설에 필요한 821억원을 확보해 대기업 유치에 나서겠다”는 등의 지역개발 공약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40분간의 연설 말미에 유방암에 걸린 부인 김민경씨가 선거 운동 이후 처음으로 유세차에 올랐다. ‘순돌이 아빠’로 알려진 배우 임현식씨가 “이 모든 일은 제수씨의 내조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김씨를 소개했다. 이 후보의 눈가가 붉어졌다. 대신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을 지낸 ‘정권 실세’ 이미지는 의식적으로 피했다.

 새정치연합 서갑원 후보는 ‘정권심판론’을 내세웠다. 서 후보는 27일 안철수 공동대표, 주승용 사무총장 등 지도부와 함께 순천시 풍덕동 아랫장 사거리에서 유세를 했다. 안 대표는 “6월 지방선거 당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고 한 약속도 새누리당은 안 지키는데, 지금 1번 후보의 공약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주승용 사무총장은 “순천을 두 배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이정현 후보를 떨어뜨려 장관을 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선거에서 져도 이 후보에겐 정권 차원의 ‘보은 입각’이 있을 것이란 주장이었다.

 새정치연합은 22일 김한길 공동대표, 26일 문재인 의원이 다녀간 데 이어 이날 다시 안 대표와 박영선 원내대표가 내려오는 등 총력 지원전을 펼쳤다.

 서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지낸 ‘친노 적자(嫡子)’ 이미지를 부각했다. 그는 “3선에 성공하면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순천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김혜선(36·여)씨는 “17대 때 부도임대 아파트 문제를 해결한 걸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화상경마장을 백지화시킨 것도 큰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유죄가 확정됐다 복권된 서 후보는 “박연차 사건은 기획 사정이고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엎치락뒤치락이다. 지난 17~20일 본지 여론조사에선 서 후보 37.1%, 이 후보 28.1%였다. 하지만 23일 여수MBC와 순천KBS 조사에선 이 후보(38.4%)가 서 후보(33.7%)를 앞섰다.

순천=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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