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한국전 참전용사를 우표로 남기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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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64년 전인 1950년 12월 4일 토머스 허드너 중위는 함경남도 장진호 일대를 날고 있었다.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였던 그는 전우가 몰던 전투기가 추락하자 목숨을 걸고 자신의 전투기를 근처에 착륙시켰다. 동료 전투기의 동체에 붙은 불은 눈을 뿌려서 껐지만 전우는 기체에 몸이 끼어 빼낼 수가 없었다. 구조 헬기를 요청하며 구조를 시도했지만 결국 그는 동료를 빼내오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동료를 구하려던 전우애로 그는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89세의 허드너가 한국전쟁 정전 61주년을 하루 앞둔 26일 워싱턴DC의 알링턴 국립묘지로 초청을 받았다. 이곳에서 허드너처럼 한국전에 참전해 명예훈장을 받은 노병들에게 기념 우표를 수여하는 헌정식이 열리면서다. 패트릭 도너휴 우정국장은 “용감하게 싸운 분들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며 “이 우표로 나라를 위해 싸운 명예훈장 수여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선언했다. 허드너는 “한국전에 참전자로서 우정국이 희생을 알아줘서 기쁘다”며 “우리 참전용사들은 북한군과 중공군을 패퇴시켜 한국을 자유 국가로 남게 했고 미국은 우방이 공격받을 때 방관하지 않음을 알렸다”고 답했다.

 미 우정국이 이날 공식 발행한 우표집은 ‘한국전 명예훈장’ 기념 우표다. 우표책엔 명예훈장 우표만 아니라 명예훈장을 받은 생존자 13명의 사진이 함께 들어갔다. 몰려드는 중공군을 기관총으로 막아 부대원들을 안전하게 퇴각시키고 자신은 포로로 잡힌 타이버 루빈 상병, 참호에 날아든 수류탄을 다시 던져 동료를 구하고 손가락 한 개를 잃으며 부상당한 카페러터 헥터 이병, 매복 공격을 받아 지휘관이 쓰러지자 그를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눈 하나를 잃었던 언스트 웨스트 일병 등이다. 우표책 3페이지엔 명예훈장 수여자 145명 전체의 이름도 기재됐다. 우정국은 이날 “4성 장군도 명예훈장을 달고 있는 일병에겐 경례를 한다”며 명예훈장 수여자들을 기렸다.

 이날 행사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서면으로 축사를 보내 “어떤 이는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지만 우리 국민은 참전용사 여러분과 먼저 떠난 동료들의 용기와 희생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누가 잊고 있는지는 자문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 참전 영웅들을 우표책으로 만들어 후세에 남기는 미국. 한국전을 얘기하면 자칫 복고풍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되는 한국. 미국에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잊어가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때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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