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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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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하루는 공자가 제자 자유가 다스리는 마을을 찾았다. 20대에 관리가 된 제자가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걱정도 된 까닭이었다. 마을에 이르자 곳곳에서 사람들이 거문고 장단에 맞춰 태평가를 부르고 있었다. 자유가 예악(禮樂)으로 백성을 교화하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승을 맞으러 달려 나온 제자에게 공자가 던진 일성은 그러나 칭찬이 아니었다.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공자가 말한 예악사상이란 예의로써 인격을 완성하고 음악으로 질서 있는 인간사회를 구현하는 통치이념이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데 불가결한 인(仁)의 정치를 일컬음이었다. 그런 걸 촌동네에서 그것도 야하고 소란한 거리음악으로 실현하는 자유가 우스웠던 것이다.

 공자 같은 성인이 아니라 한낱 무지렁이라도 같은 지적을 안 하곤 못 배길 일이 오늘날 이 땅에 또 있다. 유병언 같은 일개 잡범을 잡자고 검찰과 경찰로 모자라 육해공 3군이 투입될 거란 기막힌 얘기가 들린다.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는 연쇄살인마라면 또 모를까, 여생 망가지고 재산 축나는 게 두려운 늙은 수배자 하나 때문에 헬기가 날고 구축함이 뜨는 건 닭 잡고자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닌가 말이다. 거기에 민간의 힘까지 빌리고자 임시반상회까지 한다는 건 그야말로 개그콘서트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그래도 자유는 할 말이라도 있었다. 질책하는 스승에게 볼멘소리를 한다. “백성들에게 예악으로 올바른 도리를 배우게 하라고 이르지 않으셨습니까?” 제자의 정색에 당황한 공자는 바로 꼬리를 내린다. “농담이었다. 자유의 말이 옳다.” 논어에 등장하는 유일한 공자의 농담이다.

 농담이라 얼버무렸지만 공자는 자신의 경솔을 반성했을 터다. 큰 나라를 통치하려면 촌동네부터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니랴. 칼만 잘 쓴다면야 소·닭을 가릴 필요가 있느냔 말이다.

 오늘날 이 땅은 어떤가. 대통령의 불호령에 놀라 부산을 떨긴 하지만 과연 구축함으로 범죄자를 잡을 수 있으리라 믿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하긴 오죽 답답하면 그랬겠나. 성과는 없고 위에선 쪼고, 국민은 눈 흘기고 구원파는 비웃고, 서슬 퍼런 대통령한테 자유처럼 응석을 부릴 수도 없고…. 세월호 참사 비극에서 유병언 잡기 희극으로 이어진 드라마가 어떤 모습의 시즌3를 시작할지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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