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놔주고 시위 허용 … 근육에 힘 빼는 푸틴,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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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블라디미르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드러운 남자’ 이미지 만들기에 나섰다. ‘마초맨’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왔던 그가 대내외를 향해 적극적인 유화책을 펼치고 있다. 다음달 7일 개막해 23일까지 열리는 소치 겨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은 4일 소치 올림픽 개막에 맞춰 발효될 예정이던 집회금지법을 전격 철회했다. 당초 러시아 당국은 테러 위협과 혼란 등 안전상 이유를 들어 올림픽 기간 중 소치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었다.

 크렘린의 태도 변화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IOC는 그동안 시위 금지 조치에 강력해 반발해 왔다.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러시아 당국은 “장소와 참가 인원 등을 미리 신고할 경우 집회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물러섰다.

 AP통신은 6일 소치 올림픽의 악재로 테러 위협, 인권 문제, 동성애 차별, 날씨, 막대한 행사 비용 등을 꼽았다. 푸틴이 이 중 특히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해 정치범 석방 등 인권개선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푸틴은 지난해 12월 19일 자신의 정적이자 석유재벌이었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를 특별 사면했다. 호도르콥스키는 탈세 등 혐의로 10년간 수감됐었다.

 러시아 펑크록 그룹인 푸시 라이엇의 멤버들도 같은 달 23일 특사로 풀려났다. 이들은 2012년 2월 푸틴에 항의하는 공연을 한 후 체포됐었다. 이처럼 올림픽을 앞둔 특별사면으로 혜택을 본 이들은 모두 2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그린피스 회원들에 대한 석방은 국제사회를 향한 푸틴의 유화책이다. 19개국 30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지난해 9월 북극해 유전개발 반대시위로 러시아 당국에 체포돼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이들은 특사로 풀려나 12월 29일 모두 러시아를 떠났다.

 지난해 6월 제정된 러시아의 ‘동성애 금지법’ 논란에 대해서도 푸틴은 직접 입장을 밝혔다. IOC와 국제축구연맹(FIFA) 등 국제 스포츠 기구들이 “성적 소수자들을 차별해선 안 된다”며 러시아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결국 푸틴은 “민족·인종·성적 정체성 등과 무관하게 모든 선수와 팬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푸틴의 이런 ‘올림픽 정치학’에 대해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올림픽 성공을 위한 자세 낮추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선지 주요국 정상들은 대거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등이다. 이들은 불참 이유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러시아 인권상황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것이 외신들의 분석이다.

 올림픽 성공을 위한 푸틴의 내부 단속도 꼼꼼하다. 푸틴은 지난해 말 소치를 방문한 후 올림픽 관계자들에게 “새해 휴가를 반납하라”고 지시했다. 올림픽 준비가 덜 됐다는 질책이다. 새해 첫날 푸틴은 연쇄 테러가 발생해 34명이 숨진 남부 도시 볼고그라드를 전격 방문했다. 전날 극동 하바롭스크에서 새해맞이 행사에 참석한 후 바로 수천㎞를 날아가 볼고그라드를 찾은 것이다. 테러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다. 외신들은 “올림픽 유치 때부터 전면에 나섰던 푸틴이 내놓은 전례 없는 조치들은 러시아에서 열리는 첫 겨울올림픽을 자신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삼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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