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단시간 노동·고임금 시대가 밀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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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장시간 노동과 근면, 남다른 교육열로 성장잠재력을 키워왔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60년 만에 근로환경이 대변혁을 맞고 있다. 저임금·장시간 근로체계를 고임금·단시간 형태로 완전히 바꾸는 180여 개 법안이 국회에 올라와 있다.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현실화, 육아·출산휴가 확대, 정년 연장 등이 눈앞의 현실이 된 것이다.

 기업들은 한꺼번에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산통(産痛)이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새 근로조건이 고용률 70%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이란 입장이다. 그러나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임금이 오르는 만큼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기업들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미리부터 겁 먹을 필요는 없다. 독일은 노사정 합의로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삭감을 통해 고용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경제위기를 넘겼다. 국내에서도 유한킴벌리가 정리해고 대신 4조 교대 근무제를 도입해 생산성과 이익 증대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바 있다. 결국 관건은 어떻게 생산성을 끌어올리느냐에 달렸다. 문제는 우리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26.2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7%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34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에 가까운 28위다.

 노동시간 단축과 고임금은 새로운 실험이자 도전이다.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유일한 대비책은 급변하는 고용환경을 노동시장 혁신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독일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세계 119위에 머물 만큼 뒤처졌지만 국가경쟁력은 6위를 차지했다. 그 비결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우리의 두 배가 넘는 55.75달러로 끌어올린 덕분이다. 우리 기업들도 연구개발과 직원 교육을 통해 노동생산성부터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단시간 노동·고임금은 파멸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