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질서한 정치적 증세를 경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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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주당 의원 10명이 과세표준 5억원 이상에 45%의 세율을 매기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일부 의원도 최고세율 구간을 낮추는 방식의 ‘부자 증세안’을 제출했다. 본격적인 증세 논쟁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이미 박근혜정부의 공약 가계부는 차질을 빚고 있다. 84조원의 세출 절감은 뒤뚱거리고, 51조원의 세입 확충도 난감한 상황이다. 첫 단추인 비과세·감면 정비의 세법개정안은 십자포화를 맞았다. 전·월세 대책으로 취득세율을 영구 인하하는 등 세수 기반은 불안하다. 자칫 벼랑 끝에 몰리면 언제 무질서한 증세폭탄이 쏟아질지 모른다.

 증세를 하려면 염치가 있어야 한다. 우선 정부와 여야는 세출 절감부터 시작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야당은 “복지에는 손대지 말라”는 입장을 접어야 한다. 성역을 두지 말고 과감하게 세출을 구조조정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솔직하게 “복지 확대를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납세자에게 손을 벌리기에 앞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정치권은 ‘부자 증세’에 대해 “선진국들도 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낮은 세율, 넓은 세원’과 ‘조세 형평성 제고’라는 대원칙에 어긋난다. 오히려 소득세는 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에 따라 면세 한도 축소와 과표 양성화부터 손대야 한다. 또 17년간 동결된 소득세 과표구간 전체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면서 세율을 함께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은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무질서한 증세다. 이를 막으려면 정부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증세의 로드맵부터 고민해야 한다. 사회 보험을 포함한 조세부담률은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또 직접세와 간접세의 비중은 어떻게 바꿀지부터 정리해야 한다. 자꾸 칼질하기 쉬운 소득세만 도마에 올려선 안 된다. 소득세와 함께 법인세·소비세는 어떻게 바꿀지 종합적인 틀부터 마련해야 한다. 이미 정치권에는 ‘땜질 증세’의 불길한 조짐이 어른거린다. 중장기적 안목의 증세 마스터플랜이 시급하다. 그래야 국민적 동의 위에서 조세저항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