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빚내 추경하는데 숟가락 들고 달려든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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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의원들 스스로 “솔직히 부끄럽다”고 토로한 일이 벌어졌다. 그제 국회 국토교통위 예산심사소위가 추가경정예산안을 예비심사하면서 4304억원을 증액하기로 의결한 것 말이다. 도로·지하철 등 지역 예산만 3090억원 늘렸다고 한다. 말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이지, 실상은 자기 지역구 몫의 선심성 예산 챙기기였다.

 이번 추경은 경제 악화로 인해 세입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 게 뻔해 편성됐다. 17조3000억원 중 12조원이 세입결손분이다. 정부는 이 중 15조9000억원을 국채 발행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빚을 내겠다는 얘기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미래 세대에게 큰 부담을 지우는 추경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2016년 국가채무가 정부 추정보다 85조2000억원 많은 609조5000억원이 될 거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추경 사업의 30%가량인 71개 사업이 부실하다고 봤다.

 이런 만큼 예산 심의·확정권을 가진 국회가 의당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나섰어야 했다. 그게 책무였다. 하지만 예비심사 과정에서 보인 의원들의 행태는 곳간 열쇠를 맡겼더니 쌀을 빼돌린 격이고 어렵사리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겠다고 나선 꼴이었다. 규정상 구비해야 할 지방정부의 예산계획서가 없는데도 지하철 예산으로 500억원을 챙겼는가 하면, “정부가 추경을 눈먼 돈으로 보고 있다”고 비난하다가 지역구의 육교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혈안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어제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예비심사안을 의결하지 않았다. 국민적 비판 여론이 끓어오르자 한발 물러선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 재발할 일이다. 의원들의 예산 요청, 즉 ‘쪽지’가 몰리는 예결위에선 더더욱 말이다. 눈을 부릅뜨고 감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