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관련 글 교과서에서 빠질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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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6개 초·중·고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안철수 전 대선 후보 관련 글 대부분이 내년부터 교과서에서 빠질 전망이다. 정치인의 글과 이름을 교과서에 싣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교과서 검정기준 시안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시안은 올 상반기에 확정되며 내년에 사용될 교과서부터 적용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성태제)은 5일 공청회를 열고 ‘교육 중립성 관련 검정기준 적용지침 시안’을 발표했다. 새 시안이 나온 것은 지난해 도종환(민주통합당) 의원의 시 ‘담쟁이’ 등을 둘러싼 교과서 삭제 논란이 계기가 됐다. 당시 평가원 산하 국어교과서검정심의회가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도 의원 작품을 교과서에서 뺄 것을 권고했으나 논란이 일자 이를 철회했다. 안 전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그를 긍정적으로 서술한 현행 교과서가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형평성 논란을 낳기도 했다. [중앙일보 2012년 9월 20일자 19면]

 시안에 따르면 앞으로 교과서에 정치인의 사진과 이름을 수록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정치인의 범주에는 ▶대통령 ▶국회의원 ▶정당인 ▶정무직 공무원 ▶지자체장 ▶지방의회 의원 ▶무소속 대통령 후보 ▶국무위원 등이 포함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무소속 대통령 후보였던 안 전 후보도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다만 ▶학습 맥락상 타당하고 ▶평가가 아닌 사실만 쓸 경우 검정심의위원 투표를 통해 3분의 2가 찬성하면 실을 수 있도록 했다.

 정치인이 되기 전에 쓴 작품은 교과서에 실을 수 있다. 하지만 ▶학계(예술계)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거나 ▶내용에 정치적 신념, 이념적 편향성이 드러나는 경우 심의위원 표결로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제3자가 특정 정치인에 대해 쓴 글은 원칙적으로 교과서에 싣지 못하도록 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이 시안을 확정할 경우 안 전 후보와 관련한 내용은 교과서에서 빠질 수밖에 없다. 현재 그에 대한 글은 ▶초등학교 1개 ▶중학교 9개 ▶고등학교 6개 등에 실려 있다. 대부분 안 전 후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이다.

 다만 안 전 후보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쓴 자서전을 발췌한 경우 새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정치인의 자서전을 작품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날 공청회에선 새 시안이 충분치 못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토론자로 나선 성균관대 손동현(철학) 교수는 “검정 기준은 명료하고 모호한 점이 없어야 하는데 예외조항이 많아 애매한 사안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새 검정기준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참석자 대부분이 공감했다. 인하대 홍득표(사회교육학) 교수는 “이념 양극화가 심각한 한국에선 교과서에 정치인의 글이 실릴 경우 편향교육 논란이 생길 것”이라며 “당분간은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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