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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선칼럼] 변환외교의 새 파도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는 그동안 논란의 대상이 돼 왔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원칙적 합의를 했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유동군화를 인정하고 미국은 주한미군이 동북아의 지역갈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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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이슈] 밑도 끝도 없는 6월 위기설
'한반도 6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6월 말까지 북한이 6자회담 테이블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대북 제재에 착수하고 이에 북한이 반발, 한반도에 일대 위기가 조성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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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국제정치 큰일 났다
국제정치가 흔들리고 있다. 흔들림의 강도가 심상치 않다. 큰일 난 것은 우리의 불감증이다. 지진의 충격파가 무섭게 밀려오고 있는데도 무감각한 것이다. 우리는 19세기 제국주의.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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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 깊어지면 동아시아 질서 위태"
한국과 일본 사이에 파도가 거칠어졌다. 양국 정치인.장관이 경쟁하듯 목소리를 높이는 와중에, 사안의 앞뒤와 경중(輕重)을 한 발짝 떨어져 냉정히 생각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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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북파 공작원 그 진실은] 백령도서 '氣球 타고 北 침투' 계획
실미도 북파부대가 창설된 1968년. 정전협정 체결 후 남북이 가장 치열하게 대치했다. 124군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양민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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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재판장이 독단적으로 무죄 선고
군사재판에 재판장으로 참여한 영관급 장교가 판결 선고전 군 판사들과 유죄를 선고하기로 한 합의를 무시하고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판장이 군 판사들과의 합의를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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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박정희시대]27.한·일 국교정상화
한.일회담은 밀실회담이었기에 권력 변화에 민감했다. 일본은 박정희 (朴正熙) 라는 새 권력자를 협상의 최고 파트너로 판단, 군정 (軍政) 기간중 회담을 타결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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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50주년 격동의한국 현대50년사50大 그사건들
올해로 광복 50주년을 맞았다.45년 8월15일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은 잠시였고 분단.전쟁.쿠데타 등 한반도의 질곡은 오늘까지 끊이질 않고 있다.정치적으로는 통치권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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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위 불참,남북합의서 위반(사설)
북한은 29일로 예정됐던 제460차 군사정전회의에 아무런 예고없이 불참함으로써 정전협정과 관례를 위반했다. 정전협정에는 어느 한쪽이 회의개최를 요구하면 날짜를 수정제의할 수는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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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왜 남북관계 맡나”(국회본회의 지상중계)
◎내정불안 덮는 북방정책 곤란/질문/남북정상회담 서둘지 않겠다/답변 ○23일 질문 ▲문동환 의원(평민)=정부는 통일원칙으로 자주·민주·화해를 주장하면서 민주원칙은 오직 자유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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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97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 대립/박헌영 관속에 숨어 평양행/공산당선 전국 총파업으로 미 군정에 대항 여운형은 그의 측근에게 공산당과 박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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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휴전회담(후반부)(24)|한미관계의 긴장(4)
6월25일부터 시작된 서울의 「소 휴전 회담」은 18일 만인 7월12일에야 일단락 되어 공동 「코뮤니케」가 발표되었다. 「아이젠하워」대통령의 특사 「월터·로버트슨」차관보는 처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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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휴선 회담의 개막 (20)|「6·25」21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포로 논쟁 (1)
1952년1월2일 「유엔」군 측은 의제 제4항을 다루고 있는 분과 위원 회의에서 포로 교환에 있어 이편의 기본 입장을 밝히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내놓았다. (1)포로는 1대1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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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빌리·브란트
『2차 대전 후 독일 문제는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 요소였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빌리·브란트」의 노력은 「유럽」 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 질서에 기본적인 기여를 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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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 큰 정국
광복의 날 1945년 8월15일. 민족해방의 8·15는 바로 비극적 민족분단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36년간 지배자로 군림했던 일제가 물러간 한반도는 38분계선을 사이에 둔 채 남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