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508)|내가 아는 이 박사 경무대 사계 여록(135)|곽상훈

    (10) 이 박사는 장면박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 장 박사가 그와 대립할 아무 일도 없는데도 말없이 그를 떠나 최초의 도전자가 되었다는데서 배신감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이 아닌

    중앙일보

    1972.07.12 00:00

  • (495)제26화 경무대의 사계 여록 내가 아는 이 박사

    정부가 수립되면서 처음 나는 국회사무총장으로 일했다. 다음해인 49년6월 이 박사는 나를 김동성씨 후임으로 공보처장에 임명했다. 이때부터 중간에 서너 달 쉰 것을 제외하고는 53

    중앙일보

    1972.06.26 00:00

  • (484)|내가 아는 이 박사 경무대 4계 여록(111)|최재유

    (상) 내가 이 박사를 처음 만난 것은 해방직후 지금의 연세대 의대 전신인「세브란스」병원에 있을 때였다.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이 박사와 백범 김구, 우 사 김규식, 이시영, 해

    중앙일보

    1972.06.13 00:00

  • (제26화)|"당연한 대한민국 관할" UN서 묵살 우리 행정관 있어도 실권은 「군정」에

    수복지 통치 평양탈환 이후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작전은 더욱 순조롭게 진행됐다. 적의 완강한 저항이 예상됐었으나 괴뢰군은 의외로 맥없이 신의주로 달아났다. 당시의 추세로 보아 연

    중앙일보

    1972.04.04 00:00

  • (410)|경무대 사계(37)|고재봉

    이 박사는 공정을 행정의 기본으로 했다. 후일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특히 인사행정엔 무던히 신중을 기하고 보다 적임자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어쩐 셈인지 정부고위관계자의

    중앙일보

    1972.03.17 00:00

  • (395)|상무대 사계(22)|윤석오

    (라) 남은 각료 중 교통장관에는 군정관료 케이스로 민희식씨, 체신장관에는 그 무렵 몹시 불만이 많던 무소속 구락부의 무마를 위해 이 구락부 대표인 윤석구 씨를 임명했다. 윤씨에

    중앙일보

    1972.02.29 00:00

  • 여당서 정부경제 팀에 화살

    정부가 당면경제정책을 브리핑한 22일 공화당 정책심의회에선 정부의 현실파악이 안이하다는 상임위원장들의 비판이 많았다고. 경제부처장관이 모두 참석한 회의에서 경제부양책에 대한 보고가

    중앙일보

    1972.02.23 00:00

  • 1971년 주요사건 일지

    71년은 국내·외적으로 격동 속에 저물었다. 안으로는 양대 선거를 치렀고, 안보문제가 크게 「클로스 업」되었다. 10월 중공의 유엔가입은 국제정치질서의 개편을 가져왔고, 우리에게도

    중앙일보

    1971.12.30 00:00

  • 사법파동·안보공방 20일 8대 첫 국회의 결산

    8대 국회를 출범시킨 제77회 임시국회는 몇 차례 격동의 위험을 극복하고 14일 20일간의 회기를 끝맺었다. 개원식에 박대통령도 참석하는 여야협조「무드」에서 출발한 개원국회는 사법

    중앙일보

    1971.08.14 00:00

  • 여당간부엔 2시간 전 통고

    공화당간부들은 최두선 적십자사총재가 인도적 남북회담제안 성명을 발표하기 2시간 전에 김종필 총리로부터 이를 통고 받았다. 김 총리는 12일 아침 공화당 5역들과 삼청동 총리 공관에

    중앙일보

    1971.08.12 00:00

  • (2)법적 지위

    ①정치적 위치 ②법적 지위 ③비서실 ④역대의 얼굴 헌법과 법률은 국무총리를 행정부 제2 인자로 규정했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 부에 대한 통할권을 가진 점(헌법 49조)이

    중앙일보

    1970.12.23 00:00

  • 백 내각의 출현

    박 대통령은 19일 정 국무총리를 비롯한 전 국무위원의 일괄 사표를 수리, 후임 총리에 백두진 씨를 임명하고 개각을 단행했다. 백씨의 총리 임명과 더불어 법무·농림·체신 등 3부

    중앙일보

    1970.12.21 00:00

  • (52)-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이때 송병준은 『신에게 두 가지 대책이 있사옵니다만 도저히 청허 하시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무엇이고 말해보라.』 『이번 해아 밀사 사건은 폐하께서 잠깐 실수를 하신 것

    중앙일보

    1970.07.06 00:00

  • 한사람의 고집에 꺾인 「다수의 의견」 - 헌정기초의 막후

    우리는 19년 전 벅찬 감정을 안고 최초의 민주헌법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국회의 다수가 찬성했던 내각책임제가 한 지도자의 고집으로 대통령 중심제로 곤두박질하면서부터 헌법은 수난

    중앙일보

    1967.07.18 00:00

  • 일지

    65년12월 ▲18일=한·일 협정비준서교환 ▲23일=주일한국초대대사로 김동조씨 「아그레망」요청 66년1월 ▲3일=일 초대주한대사 목촌사낭칠씨 임명 ▲7일=김동조 주일대사·목촌 주한

    중앙일보

    1966.12.17 00:00

  • 비위 안 거슬리게 하루휴회

    외무부의 차관보를 비롯한 일본대판 복강 등지의 총영사 및 국과장급 인사이동은 처음부터 무리가 따른 탓인지 결재서류도 우보를 거듭, 아직까지 총무처에 머물러있는 실정. 이번 인사에서

    중앙일보

    1966.03.08 00:00

  • 틈 있는 「만전」 청구권법안

    재경위에서 여·야 단일 안으로 마련한 대일 청구권 자금 운용 및 관리법안은 9일의 법사위통과, 11일의 본 회의에서 의결되면 정부의 공포로 실시 단계에 들어간다. 정부원안, 민중당

    중앙일보

    1966.02.1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