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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민통」과 「민건」
지역별로 있는 순수한 교포단체 외에 정치활동을 하는 교포단체는 그 이름이 가지가지여서 교포들 자신들도 헷갈린다. 「협회」「연맹」「협의회」「동지회」「전선」「국민회의」「연구회」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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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 믿지 말라는 얘기 있다"에|"미국사람 믿어도 된다"장담
「지미·카터」대통령의 철군 특사일행을 위해 26일 하오6시30분부터 시내정동 미 대사관저에서 베풀어진「리셉션」에는 1백5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 윤보선·정일형씨 등 명동사건으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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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궤를 벗어난 어떤 권유설
전통적인 한미·한일관계에 많은 변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요즘, 이에 대한 정부방침을 마친 28일의 국회 외무·국방위 연석회의에서의 질의·답변은 국민에게 큰 곤혹을 안겨주었다고 해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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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와중에도 기업 신의는 존중돼야"|고국의 법정서 가려진 월남에서의 기업 권리 다툼
월남 패망에 앞서 「인도차이나」반도에서 활약하던 한국인 기업 사이의 권리 다툼이 전쟁이 끝난지 1년 6개월이 지나 고국의 법정에서 시비를 가렸다. 서울민사지법 합의17부(재판장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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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에서의 남북대결 리마 비동맹외상회의의 전망
제30차 「유엔」총회에서의 격돌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남북한은「페루」에서 만만찮은 전초전을 벌이고 있다. 비동맹 「그룹」가입을 각각 신청해 놓고있는 남북한은 이 문제를 결판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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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4) 제46화 세관야사(21)
우리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세관이 당면한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전방연합국의 상인들을 어떻게 취급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1949년 추석전후로 기억된다. 중공군의 중국대륙 석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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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지
「루지」(「rouge」는 「프랑스」어로 『빨갛다』는 뜻이다. 입술연지를 「루지」라고 하는 것도 그 색깔에서 유래한다. 『혁명적 정치가』를 「루지」라고도 하는 것은 얼른 이해가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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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 크메르 사태 수습모색
【워싱턴7일=외신종합】미 상하양원 원로급 의원들은 미국이「크메르」에 긴급 추원을 제공하되「론·놀」현「크메르」대통령을 하야시기고 북경에 망명 중인「노로돔·시아누크」전 국가주석과의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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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보천보 사건|이명영 집필 (성대 교수 정치학)
1937년6월4일 밤 10시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장 김일성 (당시 36세·함남 출신·「모스크바」 공산 대학을 나온 후 적군에 있다가 만주의 항일 연군에 파견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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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5세 후손 설 달 가와 않는 지스카르|포르투갈 전대통령·수상, 망명 지 브라질에 정착 작심|"도청사건은 닉슨 참모들 속물근성 때문"
『과거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적이고 정의에 찬 개방사회의 실현』을 내걸고 있는「발레리·지스카르-데스텡」프랑스 대통령당선자가「루이」15세의 후손이라는 얘기가나와「지스카르」의 보좌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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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제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행적 기(11)|제2장 일본 속에 맺힌 한인들의 원한
소준 취재를 서둘러 끝낸 후 역으로 달려갔다. 김옥균의 다음 행적 지를 찾아「하꼬다데」본선의「아사히가와」행 특급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욱천은 북해도 한복판에 자리잡은 북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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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미결의 종장(2)|제네바 정치회의(2)
53년 10월 26일부터 판문점에서 열린 정치예비 회담은 43일만인 12월 l2일에, 그리고 54년 4월 26일부터 제네바에서 막을 연 정치본회의는 50일만인 6월 15일에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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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도발에의 「유비」…철옹성 백55「마일」|「6·25」그 비극전야의 각본
『49년 초 내가 「우크라이나」에서 「모스크바」로 전임될 무렵 김일성은 「스탈린」과 일련의 협의를 하기 위해 대표단을 이끌고 왔다. 그들은 남한을 무력으로 침공하기를 원했다. 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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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휴전회담(후반부)(12)
자유송환을 주장하는 「유엔」측과 강제송환을 고집하는 공산측이 휴전회담에서 1년여 동안 논란을 거듭한 포로송환 문제는 6·25반공포로 석방으로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이 자유송환 원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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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환을 되새겨보는 특별기획(7)
▲사회=거의 한평생을 이역땅에서 살아오던 여러분께서는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으셨을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실 이야기도 고생만큼이나 많으실 것이고 또 감개무량하실 것으로 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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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경무대 사계(102)|우제하
망명 4.19의 충격으로 이 박사의 건강은 눈에 보이게 나빠졌다. 하야전후해서 자주 설사를 했다. 이화장에 와서도 평소처럼 아침저녁 산책과 정원 손질을 계속했지만 혼자 골똘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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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 경무대 사계 (90)|김상래
이 박사는 국내 신문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 신문 특히 미국에서 발행되는 「뉴요크·타임스」「워싱턴·포스트」등은 관심 있게 읽었다. 그래도 초기에는 공보 비서였던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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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동「파키스탄」분쟁 극비조정
【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야햐·칸」「파키스탄」정부와「벵글라데쉬」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비밀리에 양측지도자의 회담을 주선하려 했으나「벵글라데쉬」측이 이를 거절했다고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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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자가 본 길전 서한|당시의 문안 작성자 배택 의원 회견
일본의 대 중공 접근 움직임과 관련하여 최근 대두된 세칭 길전 서간의 처리 여부는 앞으로 일본의 대 중공 정책 방향을 가름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지난 11일 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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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루시초프』의 회고|제4부 시련의 외교|뉴요크=김영희 특파원|진위 말썽 속의「망명」비록
스탈린 사후에 새 소련 정부와 접촉을 하겠다는 생각은「처칠」의 머리에서 나온 듯하다. 우리가「제네바」회담에 동의한 이유 중의 하나는 위험할 정도로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던 말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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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남」과 「북」의 형세(7)|남침준비⑦
소련과 중공이 북괴의 남침계획에 직접 관여했다는 것은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북괴의 창군과 증강과정에서 소련의 콧김이 쏘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것은 그들의 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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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상병" 왕명|중공 9전 대회에 뛰어든 날벼락
문화 혁명은 한마디로 「아군」과 「적군」을 가려내는 중공의 한토막 소란극이다 할 수 있는데, 제9차 전당 대회를 계기로 뜻하지 않은 복병이 모택동의 전면에 나타났다. 사실 중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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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의 망향|혈육을 찾는 귀화교포 장남해씨
[자카르타=송평성특파원]「인도네시아」국적을 가진 한국인 2세 일가족이 그들의 혈육을 찾고있다. 「자카르타」에서 금속무역업을 하는 「초·난까이」씨 (장남해·45=고당디아·케칠가1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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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 아·아 단결로|6·25로 맺은 혈맹 한국 꼭 보고싶다
중앙일보는 「파리」 주재지파원 장덕상기자를 「아디스 아바바」에보내 오는5윌18일 방한하는 「이디오피아」의 「셀라시에 황제와 단독회견케하였다. 「셀라시에 황제는 장특파원과의 단독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