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 가져보자’던 박정희 집념, 내부 첩자들이 CIA에 고자질 (55) 유료 전용
미국은 한국에 은혜를 끼친 나라다. 요즘 세대 중에 미국을 고맙게 생각하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미국의 은혜는 남아 있다. 은인은 잊어도 은혜는 남는다는
-
[최준호의 사이언스&] 21세기 한국 과학기술계가 최형섭을 그리워하는 이유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짙은 구릿빛 청동 흉상이 조명을 받아 반짝인다.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 걸까. 시선이 수평에서 15도쯤 위를 향한다. 서울 홍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
-
[사이언스&] 21세기 한국 과학기술계가 최형섭을 그리워하는 이유
서울 홍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관에 있는 최형섭 KIST 초대 소장의 흉상. 사진 최준호 기자 짙은 구릿빛 청동 흉상이 조명을 받아 반짝인다.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 걸
-
[남기고 싶은 이야기] 장관 바뀌자 초대 과학원장 전격 교체 … 이해 못할 인사가 시작됐다
한국과학원(KAIS)이 개원한 지 3개월 반 뒤인 1971년 6월 3일 개각에서 과학기술처 장관이 바뀌었다. 과학원 설립을 열정적으로 지원했던 김기형 초대 장관(1925~2016
-
[사설] 과학 리더십, 박정희를 배워라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는 1965년 미국 방문 때 린드 존슨 대통령에게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베트남전 참전에
-
[사설] 과학 리더십, 박정희를 배워라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는 1965년 미국 방문 때 린드 존슨 대통령에게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보상이 명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
"학문에는 거짓이 없어야" 황 교수가 이 묘비를 봤다면 …
황우석 교수가 논문을 조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고(故) 최형섭(1920~2004.사진) 박사의 묘비를 봤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국립 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
"학문에는 거짓이 없어야" 황 교수가 이 묘비를 봤다면 …
고 최형섭 박사의 묘비에 새겨진 '연구자의 덕목'. 황우석 교수가 논문을 조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고(故) 최형섭(1920~2004.사진) 박사의 묘비를 봤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가
-
[삶과 추억] 최형섭 박사 별세
'설령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하더라도 과학자는 자기의 조국에 영예가 되는 일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루이 파스퇴르) 29일 오후 10시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한국
-
[사이언스 브리핑] 광주과학기술원 外
◆ 광주과학기술원(K-JIST)이 국내 최초로 유엔 직속 연구기관인 국제연합대학(UNU)의 공식 협력기관으로 최근 승인을 받았다. 지난달 열린 UNU 이사회에서 광주과기원이 협력기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4)
(24) 새옹지마 징조 최형섭(崔亨燮.80.포항산업과학연구원 고문)과기처장관은 몹시 화가 난 얼굴로 옆에 서 있던 전상근(全相根.73.전 청도주택 회장)과기처 종합기획실장을 쳐다봤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23)
(23) 과기처와의 충돌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내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독자적으로 레이저 프로젝트 계획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직접 제출하겠습니다. 과학기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2)
(22) 청중앞의 거짓말 오네스트 신은 잠시 답변을 주저했다. 나는 그가 왜 답변을 주저하는지 그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레이저를 사용해 핵융합이 일어나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
20. 청와대와 정면담판 오네스트 신은 과학자 답지 않게 정치적인 수완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과학계의 핵심 인맥을 통하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19)
(19) "큰 거 놓쳤어" 심문택(沈汶澤.98년 작고)국방과학연구소(ADD)소장은 나를 불러 세우더니 '오네스트 신' 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韓박사, 하버드대 출신의 '오네스트
-
[70년대 경제위기 이렇게 이겨냈다]下.위기극복 '人事가 萬事'
73~74년 에너지위기 돌파는 하나의 전쟁이었다. 참모들은 작전을 수립했고 총사령관으로 나선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은 군단장.사단장에 해당하는 부처장관을 지휘했다. 승리의 요인은
-
[실록 박정희시대]32.막내리는 핵개발
미국은 76년 1월 박정희 (朴正熙) 의 핵개발을 중지시키기 위해 국무부 관리들을 보냈다. 마이런 크러처 해양.국제환경.과학담당 차관보서리를 단장으로 한 교섭단 일행은 1월22~2
-
[실록 박정희시대]31.무르익는 핵개발
73년 3월 주재양 (朱載陽.64.재미) 박사가 원자력연구소 제1부소장에 취임, 새로 생겨난 특수사업 담당 부서의 책임을 맡으면서 핵개발은 본격화된다. 이 부서가 바로 핵개발 전담
-
[실록 박정희시대]30.자위에서 자주로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이 핵개발을 시작한 동기는 예기치 않은 미국의 주한미군 철군 통보였다. 북한에 비해 군사력에서 절대 열세였던 시절이었기에 국민들은 위기감에 사로잡혔고 박정희
-
박정희대통령,'85년 원폭보유' 계획 세웠다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은 미국의 완강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85년 원자탄 보유를 목표로 핵무기 개발을 극비리에 추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朴대통령은 또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플
-
국내 고급두뇌의 産室-인물로 본 KIST 30년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견인차로 설립 30주년을 맞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숱한 연구개발업적외에도 수많은 고급두뇌를배출,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기틀을 다졌다는 점에 많은 평가가
-
KIST원장|위상 낮아진「과학한국」견인차
한국의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기관을 들라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뭐가 하나 새로 개발됐다하면 KIST요, 과학기술관련
-
(68)핵 개발 족쇄
『리프로세스(REPROCESS=재처리)의 리(RE) 자도 아예 입에 담지 말라.』 74년 하반기부터 우리의 핵 개발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본격화됐다. 이해 5월18일 인도가 지하핵
-
과기처 장관|"과학 한국" 총수…정부 내 입지 낮다
『정보화사회와 후기 산업사회로 가면서 경제와 국민생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과학 기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기처 장관은 단순히 과학기술계나 연구소만을 대표하는 자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