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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장관 바뀌자 초대 과학원장 전격 교체 … 이해 못할 인사가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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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과학원(KAIS)이 개원한 지 3개월 반 뒤인 1971년 6월 3일 개각에서 과학기술처 장관이 바뀌었다. 과학원 설립을 열정적으로 지원했던 김기형 초대 장관(1925~2016년, 재임 67~71년)이 물러나고 최형섭 장관(1920~2004년, 재임 71~78년)이 부임했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93) #<45> 최형섭 과기처 장관의 등장 #KIST 주역 최형섭 박사 #제2대 과기처 장관 부임 #과학기술정책 무게 중심 #과학원에서 KIST로 이동 #새 과학원장 박달조 박사 #산학협력으로 프레온 개발 #재미교포로 한국어 서툴러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왼쪽)이 1971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텔레비전을 비롯한 전자제품 개발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국기기록원]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왼쪽)이 1971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텔레비전을 비롯한 전자제품 개발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국기기록원]

최 장관은 과학기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공학자이자 행정가다. 44년 일본 와세다대 채광야금학과를 마치고 해방 뒤 경성대(서울대 전신)와 해사대(해군사관학교 전신)에서 가르치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공군 장교로 참전했다. 정전 뒤 미국 유학을 떠나 58년 미네소타대에서 화학야금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국산자동차 부사장을 거쳐 62~66년 원자력 연구소장으로 일했다. 66년 신설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초대 소장을 맡다가 71년 과기처 장관이 됐다. 7년 6개월간 재직하며 대덕 연구단지 건설 추진을 비롯한 업적을 쌓았다.
최 장관은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산업화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에서 시작된다고 믿었다. 과학원 설립 이념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KIST 건설의 주역이니만큼 아무래도 우선순위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최 장관 부임 뒤 과기처는 KIST 발전을 최우선에 뒀고, 과학원은 행정 감독을 강화하고 설립 추진 내용과 내부 현황을 재점검했다.

최형섭 제2대 과학기술처 장관이 연설하고 있다. [중앙포토]

최형섭 제2대 과학기술처 장관이 연설하고 있다. [중앙포토]

장관 교체 8개월 뒤 과기처는 임기가 한참 남아있던 과학원장을 교체했다. 개원 전인 71년 1월 27일 3년 임기로 취임했던 이상수 원장은 14개월 만인 72년 3월 10일 물러나고 제2대 원장으로 미국 국적의 재미교포 화학자인 박달조 박사가 취임했다. 불소화학공업 연구의 개척자로 세계적 명성을 지닌 당시 67세의 과학자였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오하이오주의 데이튼대를 마치고 37년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시절 제너럴모터스(GM) 냉장 부문에서 일하며 산학협력 경험을 풍부하게 쌓았다. 37~47년엔 뒤퐁사에 근무하며 냉장고 냉매와 소화기, 에어로졸 충전재로 쓰이는 비독성 물질인 프레온 가스를 개발했다. 프라이팬이나 냄비에 음식이 달라붙지 않게 해주는 코팅재로 유명한 테플론 개발에도 공헌했다. 이런 과정에서 수많은 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47~72년 콜로라도대 화학과 교수를 맡아 후학을 양성하다 72년 과학원에 합류했다. 박 교수는 한국어는 서툴렀지만, 행정 능력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산업 현장과 대학을 동시에 경험한 인물이었다.

박달조 제2대 한국과학원장. 하와이에서 태어난 재미교포로 미국 GM과 뒤퐁사에서 근무하며 불소화학공업을 개척하다 콜로라도대 교수로 일했다. [사진 중앙포토]

박달조 제2대 한국과학원장. 하와이에서 태어난 재미교포로 미국 GM과 뒤퐁사에서 근무하며 불소화학공업을 개척하다 콜로라도대 교수로 일했다. [사진 중앙포토]

나는 과학원 신입생으로 우수한 학생과 현장 경험자를 동시에 뽑아 이들의 지성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융합하기를 기대했다. 이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초창기 모델을 따른 것인데, 뉴욕 공대에서 경험한 산학협동 방식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학협력 경험이 풍부한 박 원장이 취임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기쁨도 잠시, 이해하기 힘든 인사 발령이 났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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