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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미디어 산업을 뒤흔든 지방도시 무명 교수
루터, 브랜드가 되다 루터, 브랜드가 되다 앤드루 페트그리 지음 김선영 옮김 이른비 무명의 지방 소도시 대학교수가 세계사를 바꾸는 글로벌 대스타가 되기까지. 줄거리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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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혁명 구심점 됐던 교회, 공산 독재 붕괴 뒤 되레 약화
━ 독일 통일 그 후 30년 〈6〉 동독 시절 목사였던 요아힘 가우크 전 독일 대통령(오른쪽)이 2012년 3월 23일 베를린 분데스탁(연방하원)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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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가라사대 “맥주 마시고 자면 천국 갈 수 있다!”
━ 백경학의 맥주에 취한 세계사 독일 화가 안톤 폰 베르너(1843~1915)가 그린 보름스 제국회의 장면. 1521년 독일 황제는 마틴 루터를 처형하기 위해 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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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밀려 실직할 그들 칼바람 버틸 ‘외투’는 있는가
━ [경영, 인문학에 길을 묻다] 고골의 『외투』 파티 뒤에 귀가하는 아카키-쿠스토디에프 그림(1905).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Nikolai Vasiliev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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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중세인'이었던 루터...종교개혁은 어떻게?
마르틴 루터의 성경. ━ 500년 전 그날, 비텐베르크 교회에서 무슨 일이? 루터의 초상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이름 없는 수도사였던 마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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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피해 숨어지낸 골방, 그곳이 루터의 광야
━ 종교개혁 500년-현장을 가다 독일 비텐베르크 루터가 대자보를 붙였던 비텐베르크 교회의 정문. 지금은 철문에 '95개 논제'가 새겨져 있다.마르틴 루터는 고민했다.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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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년, 현장을 가다](하) 마르틴 루터는 왜 16세 연하의 수녀와 결혼했나?
마르틴 루터는 고민했다. 고해성사를 하는 이들이 갈수록 줄었다. 이유를 알아봤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면죄부(면벌부) 때문이었다. 루터가 살던 시골 도시 비텐베르크에서는 면죄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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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당한 루터 집엔, 금화 넣으면 천국 간다는 면죄부함
━ 종교개혁 500년-현장을 가다 독일 아이슬레벤 아이슬레벤 시청사 앞 광장에 세워져있는 마르틴 루터의동상.독일에는 ‘루터의 도시’가 둘 있다. 그가 나고 죽은 아이슬레벤과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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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현장을 가다(중)-독일 아이슬레벤
독일에는 ‘루터의 도시’가 둘 있다. 그가 나고 죽은 아이슬레벤과 종교개혁의 기치를 올린 비텐베르크다. 비텐베르크에는 파문당한 루터가 아내와 함께 살았던 루터 하우스가 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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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망치 소리는 근대를 깨우고
비텐베르크에 세워진 루터 동상. 손에 든 독일어 성경에는 독일식 프락투어체가 새겨져 있다. 왼쪽 면에서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되는 오른쪽 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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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만 다니면 뭐하나, 예수공부 안 하면 그리스도인 아닌데 …
━ 종교개혁 500년 ④ 성서신학 석학 정양모 신부 “교회에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인가?” 정양모(82) 신부는 가톨릭 사제다. 프랑스 리옹대학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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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나간다고 다 그리스도인 아니다, 교회 안 나가는 참그리스도인도 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인가?" 정양모(82) 신부는 가톨릭 사제다. 프랑스 리옹대학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프랑스어와 독일어, 영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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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목사께 축복을 받으시겠습니까? 언어를 선택하세요"(영상)
바둑만 인공지능에게 양보할 일이 아닌 듯하다. 교회의 미래도 AI와 로봇에게 맡겨질 지도 모른다. 독일의 작은 마을인 비텐베르크에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500년만의 도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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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CEO를 위한 인문학-역사를 만든 ‘죽은 백인 남자들’ (10) 마르틴 루터
최고경영자(CEO)는 끊임없이 혁명, 그리고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개혁을 해야 한다. 마르틴 루터(1483~1546, 우리나라 기독교한국루터회총회의 표기는 말틴 루터)는 종교개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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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담긴 한 음 한 음에 바흐 음악 거장도 감탄
서울모테트합창단이 동양 최초로 ‘바흐 음악의 본산’ 독일 튀링겐 바흐페스티벌(Thringer BachWochen)에 초청받았다(15~16일). 바흐 음악의 거장 헬무트 릴링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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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NIE] 루터는 왜 교황에 맞섰나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 외벽에 대자보 하나가 붙었다. 세계사 변천에 큰 영향을 끼친 글 중 하나인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다. 교황청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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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하우스 곳곳에 개혁 흔적이…
루터가 죽기 직전 섰던 설교단이 그대로 남아있는 아이슬레벤의 성 앤드루 교회. 옛 동독 시절 오랜 종교 박해의 영향때문인지 신도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루터의 자취를 좇아온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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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마르틴 루터
2017년이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1517년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의 외벽에 붙였던 루터의 대자보가 촉발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상당히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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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종교개혁 500년, 그 현장을 가다 [중] 개혁의 꽃 - 독일의 루터
독일의 신학자들이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에서 루터의 흔적을 짚어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 루터의 묘가 보인다. 루터는 교회 안내인이 손으로 가리키는 설교대에서 기독교 정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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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칼럼] ‘독가스 과학자’ 프리츠 하버(10)
“Science is a wonderful thing if one does not have to earn one’s living at it. 과학은 그곳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할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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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갈등 "칼에서 대화로"
오랫동안 갈등과 반목을 거듭해 온 지구촌 종교계가 종교간.종파간 화해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이들의 화해 움직임은 20세기를 마감하고 새 천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이뤄지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