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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만 다니면 뭐하나, 예수공부 안 하면 그리스도인 아닌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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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종교개혁 500년 ④ 성서신학 석학 정양모 신부

“교회에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인가?”

말하고 사는 방식이 예수와 닮으면 #성당·예배당 안 가도 참그리스도인 #어려운 예수공부, 더 힘든 예수닮기 #진국 같은 사제 찾아 가르침 배워라 #이것도 저것도 좋다는 ‘도도주의’ #가톨릭은 줏대 있게 범위 좁히고 #이거냐 저거냐 가리는 ‘냐냐주의’ #개신교는 ‘애꾸’ 벗어나 넓게 봐야

정양모(82) 신부는 가톨릭 사제다. 프랑스 리옹대학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프랑스어와 독일어, 영어를 한다. 또 예수가 썼던 아람어를 비롯해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에도 능통하다. 성서신학에 있어서 ‘최고 중의 최고’로 꼽히는 당대의 석학이다. 13일 그를 만나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루터의 종교개혁, 그 심장을 물었다.

정양모 신부는 “가톨릭 신자든 개신교인이든 모두 그리스도인이다. 예수 공부와 예수 닮기를 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정양모 신부는 “가톨릭 신자든 개신교인이든 모두 그리스도인이다. 예수 공부와 예수 닮기를 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당시 마르틴 루터가 주창한 메시지는 뭐였나.
“루터는 교회 제도를 부정했다. 그리고 ‘원천으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왜 교회 제도를 부정했나.
“당시의 교회 제도가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원천으로 돌아가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걸 막고 있었다.”
루터가 ‘95개조’를 내걸었던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 지금은 철문에 새겨 있다.

루터가 ‘95개조’를 내걸었던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 지금은 철문에 새겨 있다.

1517년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다 교회 개혁을 위해 함께 토론해보자며 ‘95개조’를 담은 대자보를 내붙였다. 3년 후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0세는 오히려 루터를 파문해 버렸다. 이로 인해 루터의 종교개혁에 불이 붙었다. 교황은 왜 루터를 외면했을까. 정 신부는 그 뒤에 깔려 있는 역사적 배경을 입체적으로 설명했다.

루터의 95개조, 뭘 뜻하나.
“교회에 개혁할 과제가 산적했음을 말한다. 사실 95개조 대부분이 귀담아 들어야 할 조항이었다. 그런데 레오10세는 무시했다.”
교황은 왜 루터의 제안을 무시했나.
“레오10세는 메디치 가문 출신이었다.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문예부흥)를 주도한 명문가였다. 문화인 중의 문화인으로 자처했다. 당시 교황은 알프스 산맥 이남인 라틴 문화권만 생각했다. 알프스 이북에 사는 게르만족을 야만족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라인강변에 있는 도시 쾰른까지는 봐 줄만 했다. 쾰른은 게르만땅이지만 로마의 식민읍이었다. 그래서 라틴 문화권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루터가 사는 비텐베르크는 달랐다.”
어떻게 달랐나.
“베를린은 쾰른보다 훨씬 동북쪽이다. 오히려 폴란드 국경과 가까운 곳이다. 비텐베르크는 베를린에서 약간 남쪽인 시골마을이다. 교황은 알프스 이북에 야만족이 사는 시골마을의 교수 신부라는 자가 무엄하게 대드는 정도로만 여겼다. 그래서 무시했다. 상대를 안 했다. 95개조를 들어줘야 했음에도 말이다.”

마르틴 루터는 1517년에 교회 개혁을 위한 95개조를 내걸었고 철회하지 않았다. 이에 교황청은 1520년 칙서를 내려 가톨릭 사제였던 루터를 파문했고, 루터는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교황의 칙서를 불에 태워버렸다.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이 붙는 순간이었다.

루터는 ‘성경으로 돌아가자, 예수로 돌아가자’고 주창했다. 그 의미는 뭔가.
“가톨릭 교회는 포괄적이고 포용적이다. 이것저것 지상의 가치를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복잡하고 신앙의 중심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루터는 ‘선택’을 부르짖었다. ‘이것이냐, 아니면 저것이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게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점이다.”
그건 어떤 선택인가.
“가톨릭은 성경과 전통을 말한다. 개신교는 ‘성경은 예스, 전통은 노’다.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성인들을 말한다. 개신교는 ‘예수는 예스, 성모와 성인은 노’다. 가톨릭은 구원을 위해 은총과 선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개신교는 ‘은총은 예스, 선행은 노’다. 둘은 그렇게 다르다.”
그게 두 종교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한 건가.
“그렇다. 가톨릭은 신학도 복잡하고, 영성도 복잡하고, 제도도 복잡하다. 그래서 ‘중심’을 추구해야 한다. 반면 개신교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을 중시하다 보니 ‘애꾸’ 현상이 있다. 한쪽만 보는 거다. 이게 개신교의 기질이 돼버렸다. 그걸 가리켜 가톨릭은 이것도, 저것도 하는 ‘도도주의’, 개신교는 이거냐, 저거냐 하는 ‘냐냐주의’라고 부른다. 가톨릭은 범위를 더 좁혀야 하고, 개신교는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
그럼 공통분모는 없나.
“있다. 신약시대 안티오키아에는 일요일마다 모여서 성만찬을 거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리스도’를 찾았다. 시간만 나면 ‘그리스도’를 읊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그게 공통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루터의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그리스도인으로 돌아가자’는 뜻이기도 하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뭔가.
“교인이 누구인가.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교적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다. 명목상으로 세례를 받고, 교적에 이름을 올리고, 정기적으로 헌금을 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나는 실질적인 그리스도인은 따로 있다고 본다.”

정 신부의 발언은 뜻밖이었고 파격적이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묻는 질문에 그는 “따로 있다”고 답했다. 교회에 이름을 올리고,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꼬박꼬박 헌금을 하는데도 “실질적인 그리스도인은 따로 있다”고 잘라 말했다.

따로 있다는 게 무슨 말인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경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많이 다르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피실 적에 교회 안에도 비그리스도인이 수두룩할 수 있다. 교적에 이름만 올렸을 뿐, 예수공부와 예수닮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반면 성당이나 예배당에 다니지 않는데, 그 사람이 말하고 생각하고 사는 방식이 어딘가 예수와 닮았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실질적인 참그리스도인이라는 거다. 교적상 비그리스도인이지만 말이다.”

이 말끝에 정 신부는 신약성서의 한 구절을 꺼냈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오복음 7장21절) 이어서 정 신부는 “이건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니다. 성서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고, 또한 세계적인 가톨릭 조직신학자 카를 라너(1904~84)가 50년 전에 이미 한 말이다”고 말했다. 독일 출신 예수회 신부이기도 한 라너는 ‘20세기 가톨릭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카를 라너는 뭐라고 했나.
“성당이나 예배당에 오지 않지만, 사는 모습이 어딘가 그리스도인과 일맥상통한 사람들. 라너는 그들을 독일어로 ‘아노니메 크리스텐(Anonyme Christen)’이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무명 그리스도인’이란 뜻이다. 교적에 이름이 없는 그리스도인이다.”

정 신부는 ‘예수 공부’와 ‘예수 닮기’를 거듭 강조했다. “예수 공부는 어렵다. 예수 닮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이 포기한다. 공부도 포기하고, 닮기도 포기한다. 그런데 그게 뭘 뜻하는지 아나. 그건 그리스도인이 되는 걸 포기하는 것이다. 교회만 다닌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공부와 예수 닮기. 어떡하면 되나.
“한국에는 가톨릭 사제가 6000명이다. 개신교 목사님은 약 10만 명이다. 그런데 성경을 파고드는 사람이 갈수록 드물다. 강론과 설교 수준도 문제다. 신자를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이 참 중요하다. 만약 누가 신학적 소양이나 영성훈련을 받고 싶다면 이제민 신부님(마산교구)과 서공석 신부님을 추천한다. 서 신부님은 매주 강론을 인터넷에 올린다. 전국에서 수천 명의 목마른 신자들이 거기서 목을 축인다. 이 신부님은 일선 성당에서 사목은 하지 않지만 수백 명을 모아 계속 영성훈련, 신학훈련을 시킨다. 두 분은 가톨릭의 보배다. 진국이다. 제가 모를 뿐이지, 목사님들 가운데서도 그런 분이 더러 계실 것이다.”
왜 진국이 중요한가.
“주위를 둘러보라. 성경공부 그룹도 , 영성훈련 그룹도 많다. 그 중에서 진국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 빼앗기고, 돈 빼앗기기 십상이다. 진국이어야 역사적 예수든, 신앙의 예수든 제대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왜 교회를 떠난다고 보나.
“교회의 제도가 마음에 안 드니까.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안 되니까. 그래서 귀찮기만 한 거다. 만약 도움이 된다면 사람들이 찾아간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교회는 귀찮은데, 예수는 매력적이다. 왜 그런가.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기축의 시대’를 말했다. 4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현생 인류의 조상이 나타났다는 게 정설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수렵과 농경생활을 했다. 불과 5300년 전에야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5000년 전에야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등장했다. 인류가 자신의 문명을 성찰하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서기 전 600년에서 서기 100년 사이다. 그 700년 동안에 석가와 공자, 그리고 예수가 등장했다. 그들이 지난 2500년간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2500년동안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류의 과학은 장족으로 발전했지만, 정신문화는 기축문화의 영향으로 산다. 앞으로도 부처님, 공자님, 예수님에게 매료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 집단은 환영을 못 받아도, 깊이 깨달은 현자들은 여전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 안에 영성의 목마름이 있기에.”

정양모 신부가 추천하는 책 3권

 ●『하씨딤의 가르침에 따른 인간의 길』(마르틴 부버 지음, 장익 옮김, 분도출판사)=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죄의식을 강조한다. 그러나 동유럽 유대교 신비주의자들(하씨딤)은 죄의식이 지나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이치를 극명하게 밝힌다. 하씨딤은 죄의식에서 벗어나 선을 행하라고 충고한다.

●『영원과 하루·토마스 모어 서한집/토머스 모어경의 생애』(토머스 모어·윌리엄 로퍼 지음, 이미애 옮김, 정원)=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 국왕이 영국 국교회를 세우려는 계획에 반대하다가 1535년 7월 6일 런던탑에서 참수되었다. 그가 남긴 서한집과 그의 사위 윌리엄 로퍼가 쓴 모어의 생애를 합쳐서 펴낸 책이다.

●『다석 강의』(다석 유영모 지음, 교양인)=매일 새벽 에 일어나 아침·점심 굶고, 해질 때까지 묵상삼매에 들어간 다석(多夕) 유영모(1890~1981)가 종로 YMCA에서 행한 연경반 강의 일년치(1956년 10월17일~57년 9월13일)를 정리한 기록이다. 다석은 “없이 계신 하느님”(眞空妙有)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산 동방의 성인이다.

◆정양모 신부

가톨릭 안동교구 소속.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교 졸업 후 1963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70년에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성서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이스라엘로 건너가 도미니코회 성서연구소에서 연구했다. 광주가톨릭대, 서강대, 성공회대 교수 역임. 현재 다석학회 회장이다. 저서로 『불쌍히 여기소서』『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나는 예수를 이렇게 본다』『마르코 복음서』『루가 복음서』 등.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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