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제 3회 「외술상」실천부문 수상 엄대섭씨

    25년간 마을문고 등 농어촌 독서보급에 헌신해온 엄대섭씨(54세)가 제3회 「외술상」의 실천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엄대섭씨가 외술 최현배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이상을 받게된 것

    중앙일보

    1974.03.15 00:00

  • 교주 순교 백10주|천도교 선열 위령식

    천도교는 지난 10일 상오10시 중앙총본부 및 각지방교구에서 일제히 최제우선생 순교 1백10주년 순교선열합동위령식을 가졌다. 최제우선생은 천도교 창도 후 5년째인 1864년 3월

    중앙일보

    1974.03.12 00:00

  • 긴급조치비난·유언비어 퍼트린 두 피고에 10년·12년

    비상보통군법회의 제2심판 부(재판장 박현식 중장)는 8일 대통령긴급조치위반혐의로 구속기소 된 윤석규 피고인(26)에게 징역 10년·자격정지 12년을, 정봉민 피고인(42)에게는 징

    중앙일보

    1974.03.08 00:00

  • 닉슨, 문선명 통일교주와 1시간이나 면담|신도들의 닉슨 지지 비판한 WP지와 대결

    닉슨 미대통령은 지난 1일 함병춘 주미대사를 포함한 8개국 대사의 신임장을 한꺼번에 제정받았다. 「닉슨」대통령은 3분 간격으로 한사람씩 불러들여 악수하고 신임장을 받고 한두 마디씩

    중앙일보

    1974.02.18 00:00

  • (949)조선변호사회(24)|정구영

    백백교 사건이 경성지법 검사국에 계류 중이던 당시는 조선총독부가 3·1운동직후 육군대장이던「하세가와」 총독을 경질하고 해군대장이요, 해군대신을 역임한 「사이또」를 새 총독으로 맞

    중앙일보

    1974.01.16 00:00

  • (948)조선변호사회(23)|정구영(제자 정구영)

    백백교라는 사이비종교가 그 당시까지 10수년동안 있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었는데, 고소인인 전용주와 피고소인인 우광현이 서로 상대방의 비행을 다투어 폭로했기

    중앙일보

    1974.01.15 00:00

  • (44)|제 2장 일본속에 맺힌 한인들의 원한|제 9화 고균 김옥균의 유랑 행적기(6)

    전회(본 연재 43회)에서 언급했지만 수영문고에 소장돼있는 한국 관계자ㅛ와 구 한말 정객들의 서화 컬렉션 등은 그 질로 보나 분량으로 보나 언제든 한번쯤은 다시 한국에 가져와 전시

    중앙일보

    1974.01.11 00:00

  • (922)| 종로 YMCA의 항일 운동 (32)|전택부

    전회에서 말한바와 같이 YMCA는 3·1운동에의 길을 먼저 닦아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비겁하게 피했다는 오해를 받게 됐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오해를 받게된 이면에는 아주 근거가 없는

    중앙일보

    1973.12.11 00:00

  • 미서 맹렬 포교 활동…통일교

    한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종교단체인 통일교가 최근 미국에서 맹렬한 포교활동을 벌여 화제가 되고있다. 최근호 미국시사지「타임」은 종교 난에서 문선명씨가 이끄는 통일교의 미국 전도활동과

    중앙일보

    1973.10.15 00:00

  • 천주교주 포교사연 담은 「복자바위」가 절두산으로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1백7년전 대원군 집정때 현장으로 끌려가던 「프랑스」신부와 한국인 신도들의 순교사연을 간직한 「복자바위」가 12일 충남 아산군 음봉면 동천리 삼거리에서 서울

    중앙일보

    1973.04.13 00:00

  • 동방교간부 넷 구속

    서울시경은 1일 기독교대한개혁장로회(속칭 동방교)재단이사장 염학식목사(52)총회장 정재덕목사(52) 외부인사 포섭책 권국찬씨(35) 전도사 김중식씨(35)등 4명을 폭력행위 등 처

    중앙일보

    1973.04.02 00:00

  • (17)임진록|홍재휴 교수(대구교대) 교주

    삼등 고을(평양 동쪽 강동군)에 가니 원은 평양에 가고 비어 있었다. 하인에게 물으니 아버님이 신장(이여송)과 함께 평양에 계신다 했다. 평양으로 가며 먼저 아버님께 사람을 보내었

    중앙일보

    1973.03.27 00:00

  • 서애 유성룡의 아들 유진의 난중 체험기 임진록(16)|홍재휴 교수(대구교대) 교주

    누님이 버선을 잃을까 자못 걱정하시더니 다시 기워 주고자 하되 무명이 없으므로 누런 석새베(삼승포)로 만들어 주었는데 한발은 누렇고 한발은 희었다. 가평원 최덕순이라 하는 사람이

    중앙일보

    1973.03.23 00:00

  • (15)

    하루는 동트기도 전에 밥을 먹고 산 속에 숨으러 갈 때 마침 나는 밥을 더디 먹었다. 모두 먼저 집을 나서며 뒤따라 오라고 했다. 젖어미(유무)만이 남아서 나와 함께 비탈에 가서

    중앙일보

    1973.03.22 00:00

  • 임진록 서당 유성용의 아들 유진의 유중체취기

    기신댁의 말에 실었던 짐은 다 누님의 값진 비단옷이었다. 그 일부를 맡아 쌀을 장만하였다가 우리들에게 밥을 지어 주었다. 이진사 (매형)가 밥을 재촉하여 먹고 말에 짐을 싣고 기신

    중앙일보

    1973.03.21 00:00

  • (12)

    우리도 달렸지만 얼마 못 가서 더 걸음을 걸을수 없었다. 더구나 능장든 사람이 바싹 쫓아와 어쩌는 수 없이 길가에 비켜서 버렸다. 그들은 우리를 찬찬히 훑어 보고서 아무말 없이 지

    중앙일보

    1973.03.19 00:00

  • (11)

    길에 나가서 예(왜) 기별을 물으니 길가의 사람들이 그 아이를 보자 아는체 했다. 「너는 예에게 잡혀갔던 아이가 아니냐. 어떻게 나왔느냐?』 그 아이는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다.

    중앙일보

    1973.03.17 00:00

  • (9)마을사람 만났더니 도둑놈취급

    그러나 막상 솔잎을 먹자해도 소나무가 없었다. 그 산을 두루 보니 자중 떡깔과 속새와 가시덩굴뿐 솔잎을 얻어볼 도리가 없었다. 날이 어두운 후 동북을 향해갔다. 산 마을이 나직하고

    중앙일보

    1973.03.15 00:00

  • (5)|홍재휴 교수(대구교대) 교주|제자의 뒷배경 글씨는 『임진록』 원본의 일부(7)

    판관실내의 애걸하는 말에 예(왜)도 매우 불쌍하게 여겼던지 오래 서서 지껄이더니 웃으며 흩어져 갔다. 그때 이진사가 손에 들었던 활을 재빨리 놓았기 망정이지 만약 활을 예에게 보이

    중앙일보

    1973.03.13 00:00

  • (6)|홍재휴 교수(대구교대)교주|제자의 뒷 배경 글씨는 임진록 원본의 일부

    길잡이 김권농이 못 가겠다고 하는 이유는 소가 병들었다고 탈잡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한수에게 소리쳤다. 『네가 길을 알리라.』 일행은 한수를 앞세우고 다시 떠났다. 그때는 6월27

    중앙일보

    1973.03.12 00:00

  • (5)|홍재휴 교수(대구교대)교주|(제자의 뒷배경 글씨는 임진록 원본의 일부)

    진양으로 가려 하였지만 막상 그때 장마들어서 회양가는 길에 강물이 넘쳐 배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차제에 예장수(왜장) 가등의 병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와 금화에도 더 있을 수

    중앙일보

    1973.03.10 00:00

  • (4)서애 유성용의 아들 유진의 난중 체험기

    이튿날 일행은 영평(경기도 포천군 영중면·동면 일대)으로 갔다. 그때 할머님은 현등사에 평안히 계셨고 조종에 왜가 있다는 말도 뜬 소문이었다. 그것은 가평원이 거짓 공적을 올리려

    중앙일보

    1973.03.08 00:00

  • (3)

    대엿새후였다. 이진사와 함께 집앞 추자나무 밑에 앉아있는데 남쪽 산골짜기로부터 갓도 벗고 신도 벗은 사람이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와 그 앞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도 괴이하여 그를

    중앙일보

    1973.03.07 00:00

  • (2)

    그 이튿날 낮 후에 아주버님(백부)께서 할머님을 모시고 동대문 밖 궁으로 나가셨다. 그 궁은 외조상 광평대군이 계시던 집이라 오촌 족장이 충의를 지키고 계셨다. 새 어머니도 우리

    중앙일보

    1973.03.0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