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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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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도 달렸지만 얼마 못 가서 더 걸음을 걸을수 없었다.
더구나 능장든 사람이 바싹 쫓아와 어쩌는 수 없이 길가에 비켜서 버렸다. 그들은 우리를 찬찬히 훑어 보고서 아무말 없이 지나갔다.

<돌더미위에 죽은아이>
몇걸음 나아가니 길가 오른편의 돌더미에 아이가 엎어져 죽어있는게 보였다. 나는 앞서 가다가 놀라 물러서 달아나니 이진사가 나를 성치 못한 아이라 꾸짖었다.
이진사는 죽은 아이를 막대로 퉁기쳐 모양을 보려했으나 손에 풀을 움켜 쥐고 죽은 까닭에 쥔것이 잘 풀리지 아니하였다. 그 아이는 몸에 그리 상한 곳이 없고 얼골빛도 변치 않았는데, 우리가 낯모르는 사람이었다.
또 가다가 보니 말 한 마리가 배를 가른채 죽어있고 사람 하나가 반듯이 자빠져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야청(청흑색) 옷으로 얼굴과 몸을 덮었고 발만 드러났는데 이진사가 또 막대기로 들어보려고 하니 벌써 얼굴빛이 변하여 남녀를 분별치 못할 지경이었다.

<행인대여섯과 마주쳐>
그곳을 지나 거의 5리쯤가다 뒤돌아보니 솔이랑 가마랑 쌀을 진 사람 대여섯이 오고 있었다. 사람에게 놀란 가슴이라 달아나 길가로 피해 서니 그들은 우리일행을 흘낏 보다가 혀를 차며 말을 걸었다.
『불쌍할사! 양반인가 싶구나』하며 계속 묻기를 『어디 계시며 어떠하신 사람인가.』
기신댁이 대답했다.
『서울양반으로서 예(왜) 만나 이리 되었소.』
그들은 또 물었다.
『서울 어느 골에 계시며 예는 어디날 만나셨소.』
『사는 데는 명례방골 본궁곁이고, 예는 이달 스무이렛날 만나 부모처자를 다 잃어버리고 다만 셋이 남았으나 서로 만나지 못하여 이렇게 가나이다』하니 그 사람이 말했다.
『내 집에 예순되는 부인네가 세살 먹은 고운 사나이를 손자라 하며 업고와서 우리집에 머무르며 「행여 명례방골 본궁곁에 있느라하는 사람이 있거든 다려 오라」하더니 자네가 그와 한집 사람이 아닌가』했다.

<가리켜주는 길 찾아가>
이 말을 듣고 우리 셋은 일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기신댁은 손까지 비비며 『아무려나 사람 살리는 셈치고 함께 갑시다』하고 서두르니 그 사람은 말하기를 『여기서 멀고 나는 또 짐을 졌으니 가다가는 도적 (왜구)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니 데려다주지는 못할 것이니 어찌 하리까』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물었다.
『멀다 하시니 얼마나 머오』
『20리가 넘으니 어찌 가겠나이까.』
『20리 아니라 여러즘게(한즘게는 약30리)라도 가리다.』
그 사람이 『뒤따라 오라』하고 바삐 앞서 가기에 따라가 물었다.
『길이나 가르쳐 주시오』 하니 그는 돌아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길로 내내 10리좀 가면 길가에 큰 소나무가 있고 그 아래 왼손편에 소로가 있으니 그리로 들어오시오』 하기에 그 말대로 찾아갔더니 과연 길가에 큰 소나무가 있고 소나무 아래 왼편에 소로가 있었다.

<재회생각에 잠도 안와>
이진사가 그 길을 본체 아니하고 큰 길로 지나가시기에 내가 따라가다가 『소나무 밑 왼손편 소로로 오라 랬으니 이 길로 갑시다』했더니 이진사는 『그말인들 믿겠느냐. 그 산골로 가다가 한데(노천)서 날이 저물면 더 속을 것이니 차라리 큰길로 가야 옳으리라』하셨다.
『그러면 여기 앉아서 기다려 보십시다. 그 사람이 벌써 돌아갔을 것이니 정말 그 말이 옳으면 필연 마중을 나올 법도 하지 않습니까.』
이진사도 그 말이 옳구나싶어 셋이 그 나무 밑에 누웠으나 별로 잠도 오지 아니하고 정신이 황홀하여 의식을 차릴수 없었다. <계속>

<제자의 뒷배경 글씨는 『임진록』원본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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