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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부엌에서 술을 홀짝홀짝 자기연민에 빠져 점점 더 외로워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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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큰일이다. 온다던 선배언니가 못 오겠단다. 남편은 출장 가고 없다. 사방에 불빛도 없고 깜깜해서 별이 더 선명하다고, 지나가는 사람 없는 낙원이라고 잘난 척을 했었지만, 혼자 자는 건 무섭다. 며칠 전 TV에서 본 ‘살인의 추억’ 영화도 떠오른다. ‘사람 살려’ 소리쳐도 어느 누구 와서 도와줄 사람 없다. 이웃엔 노인들이 대부분인데 귀가 어두워 들리지도 않으실 거고, 젊은이가 있더라도 집이 너무 멀리 떨어져서 소용없다.

 해 떨어지자 커튼을 꽁꽁 여몄다. ‘여긴 아파트 속’이라 생각하기로 했지만 웬걸. 밖이 궁금해 자꾸 커튼만 들쳐본다. 안 되겠다. 차를 타고 면사무소 옆 치킨집에 들러 치킨 한 마리랑 생맥주 큰 거 한 병을 사가지고 와서, 혼자 부어라 마셔라 하며 닭 한 마리를 다 먹었다.

 혼자 마신 알코올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무섭기는커녕 도둑이랑 같이 한잔하면서 ‘어쩌다 도둑이 됐는지’ 사연도 묻고 싶었고, 귀신을 만나면 같이 한잔하면서 하소연도 듣고 맺힌 한도 풀어주고 위로도 해주자 싶었다. 앞으로는 무서울 때마다 또 혼자 마셔야지 했는데, 안 되겠더라.

 그제던가. ‘여성 알코올 중독자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그녀들의 특징은 낮에,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는데 우울증을 동반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입시에 남편은 회사에 매달리면서, 주부 혼자 밥 먹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외로움과 소외감으로부터 벗어나보려고 부엌에 앉아 혼자 밥 먹으며 한 잔 두 잔 시작한 것이 중독에까지 이른 것이라고 한다. 낮에 혼자서 홀짝대니 중독이 될 때까지도 가족들이 알아채지 못한단다.

 지난 일요일, 어떤 40대 부부와 술을 한잔했다. 남자는 음악 카페에서 밤일을 하고, 부인은 전업주부다. 아이도 없는데 내성적인 부인이 꽤나 적적하겠다 싶어 물었더니 괜찮단다. 그러던 그녀가 술이 들어가니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폭언에, 폭행에, 찻길을 뛰어다니는 대범함까지. 그녀는, 남편 없는 시간에 혼자 ‘키친’에서 홀짝홀짝 술을 마시는 ‘키친드렁커’였던 게다.

 중독이 다 그렇다. 시작이 중요하다. 소량의 알코올이야 긴장 해소에 좋지만, 양이 지나치면 ‘내가, 또’ 하는 자책감까지 생기고 또 그 자책감을 잊으려 계속 술에 의존하게 되고.

 홀짝홀짝 ‘키친’에서 혼자 술 마시지 말자. 소외감과 외로움에 빠져 혼자 술을 홀짝대다 보면 ‘난 왜 이렇게 사나’ 하는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다. 그렇게 마시면 마실수록 더 외로워진다. ‘이렇게 외로운데도 불구하고 난, 남보다 더 멋지게 살 거야’ 최면을 걸고 실행에 옮겨보자. 재미있는 책에 풍덩 빠져보든지 신나는 K팝 춤을 배우든지.

 남편과 자식들이 바쁘면 부인도 바빠야 맞는 거다. 그래야 서로에게 건강하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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