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딕테' 원작 연극 '말하는 여자'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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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31세의 나이로 요절한 재미교포 여성 예술가가 있다. 차학경. 미국의 서부 명문 버클리대 출신으로 시인이자 소설가, 사진작가, 설치미술가, 비디오아티스트, 영화감독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던 '신비한' 인물이다.

죽던 해 그녀는 소설 '딕테(DICTEE) ' 를 출간했다. 모국어를 버리고 '강제' 로 배워야 했던 이방인 언어의 독재성과 그로 인한 정체성 문제 등이 주제다. 배면엔 남성 지배의 언어에 대한 반감도 깔려있다. 부산 출신인 그녀는 11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차씨의 서사시적 소설 '딕테' 가 '말하는 여자' 라는 이름의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7~17일 서울 대학로 동숭홀에서 공연하다. 카릴 처칠의 '클라우드 나인' 등 페미니즘 계열의 작품을 주로 만들어온 극단 뮈토스가 제작했다.

초연은 아니다. 뮈토스는 98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이 작품을 처음 공연해 괜찮은 평가를 받았고, 지난해 10월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5회 세계 여성극작가회의 및 여성연극제에 초청돼 바깥물도 먹었다.

난해한 원작이 그렇듯 연극의 형식 또한 복잡하다. 모두 10가지의 분절된 이야기가 있고, 각각의 주제에 맞는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원작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홉 여신의 이름을 각 이야기의 제목으로 삼았는데, 연극도 이를 따랐다. 프롤로그로 시작해 클리오(역사) 에서 폴림니아(성시) 까지.

'역사' 에서는 일제에 맞서다 죽은 유관순 열사를 통해 민족문제를 환기한다. 이런 식으로 한국 현대사와 이민(移民) 에 대한 '말하는 여자' 의 기억이 엮인다. 극단 대표이자 연출가인 오경숙씨는 "작품이 전혀 설명적이지가 않아 어렵게 느낄 수도 있으나 다양한 이미지 연출을 통해 의미전달력을 한껏 높였다" 고 밝혔다.

이 작품처럼 장르 복합적인 무대에 관심이 많은 강화정.김민정 등이 출연한다. 평일 오후 7시30분, 토.일.공휴일 오후 4시30분.7시30분. 02-741-3391.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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