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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사고’와 ‘고장’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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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준술
경제부문 기자

국내 원자력 발전을 총괄하는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최근 e-메일과 전화를 잇따라 받았다. “사고(Accident)와 고장(Trouble)은 다르다”는 읍소였다. 최근 한 달 새 신월성 1호기 등 원전 세 개가 잇따라 멈췄다. 원전 정지는 해마다 열 번가량 일어난다. 하지만 짧은 기간 ‘연타석 정지’는 흔치 않다. 언론이 대서특필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한수원 입장은 달랐다. 방사선 유출 등이 아닌 경미한 부품·설비 이상인데 언론이 ‘사고와 고장’ 등의 용어를 뒤섞어 쓰는 통에 되레 불안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한수원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사고와 고장을 구분한다”고 했다. 실제 IAEA는 방사선 피해·시설 손상은 ‘사고’(4~7등급), 부품·설비 이상은 ‘고장’(1~3등급)으로 분류한다.

 맞는 말이다. 공연히 원전 공포감을 부추겨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자. 고리 1호기의 정전 사고를 은폐해 한수원이 뭇매를 맞은 게 불과 반년 전이다. 납품업체에서 뇌물을 받은 간부 22명은 지난 7월 구속됐다. 34년 된 고리 1호기는 지난달 재가동됐지만 안전성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러니 ‘사고’가 아닌 작은 ‘고장’에도 국민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다.

 기자가 IAEA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고장’(Incident)의 영문 표기도 한수원이 주장한 것과 달랐다. 한수원은 ‘트러블(Trouble)’이란 용어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 고시(85호) 자료를 참고했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고시를 직접 뒤져 보고, 전문가들에게도 확인했지만 쓰지 않는 영어 단어였다. 그제야 한수원 측은 “잘못 적은 것”이라며 “수정하겠다”고 물러섰다.

 한수원은 기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고장’은 자동차 계기판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 ‘사고’는 사람이 다친 경우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명백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빨간불이 자꾸 들어오면 언제 차가 뒤집힐지 모르게 된다. 한수원이 용어에만 너무 집착하다 안전을 잃는 우(愚)를 범할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