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부인 사형 선고 뒤 집행유예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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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혐의로 기소된 보시라이 전 중국 충칭시 당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왼쪽 둘째)가 9일 안후이성 허페이시 중급인민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구는 지난해 11월 집사 장샤오쥔(오른쪽)과 함께 사업 파트너이자 내연남으로 알려진 영국인 닐 헤이우드를 독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 CCTV 캡처 화면=연합뉴스]

영국인 사업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보시라이(薄熙來·53) 전 중국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52)에 대한 중국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중급인민법원의 심리가 9일 하루 만에 끝났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최대 정치 스캔들로 불리는 보 사건은 올가을 10년 만의 지도부 교체를 앞둔 가운데 벌어져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구와 집사 장샤오쥔(張曉軍·33)은 지난해 11월 13일 충칭 시내의 호텔에서 보 일가와 친분이 깊었던 닐 헤이우드(41)를 독살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당초 공안은 그가 과음으로 숨졌다고 밝혔지만, 올 2월 보의 측근인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청두(成都) 미국 총영사관에 노부인으로 변장을 하고 들어가 망명 신청을 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왕은 “헤이우드는 타살됐으며, 구가 유력한 용의자란 것을 보에게 알리자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의 요구로 이뤄진 중국 당국의 재조사에서 왕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자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보는 3월 당서기직에서 해임됐고, 중국 당국은 보를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하겠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구 역시 헤이우드 살해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고, 검찰은 지난달 그와 공범인 장을 기소했다.

 신화통신은 심리 내용을 보도하며 구를 ‘보구카이라이(薄谷開來)’라고 불렀다. 남편의 성과 함께 쓴 점으로 미루어 구가 외국 국적 소유자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통신은 “구는 자신과 아들이 헤이우드와 금전 문제로 충돌하자, 헤이우드가 아들 신변을 위협했다고 판단해 살해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또 “구는 집사 장을 시켜 헤이우드를 차로 베이징(北京)에서 충칭으로 데려온 뒤 호텔로 같이 가서 술과 차를 마셨다”며 “술에서 깬 헤이우드가 물을 달라고 하자 독을 직접 그의 입에 부었다”고 보도했다.

 이날 구의 혐의에 대한 법원의 심리는 6시간 동안 진행됐다. 검은색 정장 바지에 하얀색 셔츠를 입고 출석한 구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구는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하지 않았다. 홍콩 명보(明報)는 “구의 변호인은 구가 범행 당시 자기통제 능력이 정상인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주장하며 재판부에 선처를 구했다”고 전했다.

 법원 판결은 이르면 10일 나올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살인죄에 대해서는 대부분 사형이 확정된다. 하지만 AFP통신은 “사형에서 감형된 10~15년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작지 않다”고 예측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구가 사형당하기보다는 사형과 형의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보도했다. 아들이 다칠까 봐 걱정돼 저지른 범행이라 어느 정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 보과과(薄瓜瓜·25)가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도 구의 형량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화통신은 이날 구의 혐의를 은폐하고 자살로 사건을 종결하려 한 왕펑페이(王鵬飛) 전 충칭시 공안국 기술수사총대장 등 경찰 간부 4명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곧 보시라이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라 향후 당이 보를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현재 보는 당 중앙기율위원회에 구금돼 조사를 받고 있지만, 기소는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WSJ 등 주요 외신은 이번 재판이 중국에서 30여 년 만에 가장 큰 파급력을 갖는 정치적 사건이라고 의미를 붙였다. 보 스캔들을 올가을 당 대회를 통해 새롭게 탄생할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둘러싼 태자당(太子黨)과 공청단(共靑團) 사이의 격렬한 권력투쟁 소산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태자당 출신인 보는 올 초만 해도 차세대 최고 집단지도부 진입이 확실시됐었다.

 이에 구의 재판을 문화대혁명 이후 열린 마오쩌둥(毛澤東)의 미망인 장칭(江靑)을 포함한 4인방 재판과 비교하는 언론도 많았다. 마오 사망 뒤 정치투쟁에서 밀린 끝에 재판에 회부된 장은 혁명의 책임을 지고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결국 옥사했다.

 AP통신은 중국 지도부의 주된 목적은 살인사건 자체만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통해 권력 암투나 보의 문란한 사생활, 아들 보과과의 호화로운 유학 생활로 불거진 부정축재 의혹 등 지도층의 부패 문제가 대중의 관심을 받아 공산당의 명예에 오점을 남기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재판이 구의 주소지인 충칭시가 아니라 동쪽으로 1200㎞나 떨어져 있는 허페이시에서 열리는 것 역시 이런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아직 보가 탄탄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충칭에서 사건을 심리하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유지혜·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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