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20대를 위로하겠다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손정빈
건국대 경제학과 4학년

“우리도 마흔한 살에는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친구들과 호프집에서 TV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보며 나눈 얘기다. 드라마 주인공인 마흔한 살 남자 네 명의 삶은 화려하다. 그들은 부자이고, 좋은 직업과 집이 있다. 예쁜 여자와 데이트도 즐긴다. “노력하면 우리도 마흔한 살에는 저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다른 친구의 말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누리는 삶의 여유를 갖는 일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서점에 가보니 ‘힐링(치유)’이 대세였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 속에 빠져 있는 대중을 위로해 주는 책들이 한데 모여 있다. 누군가는 “느려도 늦은 게 아니다”고 말하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멈춰야 보인다”고 했다. “힘들 땐 그냥 울어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거대한’ 위로였다. 그 책들이 ‘너희는 반드시 힘을 내야 하고 괜찮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듯 여겨지고, 사회의 모순을 개인의 문제로 넘겨버리는 무책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나뿐이었을까. ‘힐링’ 서적을 한 권 살까 했지만 결국 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읽게 된 우리나라 20대 남성의 스트레스 질환에 관한 기사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20대 무직 남성의 경우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지난 5년간 47.4% 증가했다고 한다.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등장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일부 미디어는 이에 대해 해법을 제시했다. 사회 구조 개혁을 위해 신자유주의를 타도하자는 것.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 멀리 돌아야 하는 느낌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씨가 절판을 선언한 것은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

 20대의 우울에는 결국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살고자 하는 욕망과 이것은 이미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뒤섞여 있다. 이런 체념을 ‘힐링’해 주고야 말겠다는 위로는 청춘의 좌절된 욕망의 원인을 너무 가까운 데서 찾는다. 사회구조 개혁이라는 대의(大義)는 그 원인을 너무 멀리서 찾는다. 바로 이 양극단의 어디에도 위치할 수 없기에 위로받지 못하는, 바로 그 지점에 청년의 우울이 위치하는 것이다.

 트위터에 접속했다. 타임라인을 따라가다가 누군가 리트윗한 메시지에서 눈이 멈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의 한 구절이었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60대 중반의 소설가의 말에는 손쉬운 위로도 공허한 대의도 없었다. 그저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야 함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20대의 우울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이런 솔직함과 담백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손정빈 건국대 경제학과 4학년

◆대학생 칼럼 보낼 곳
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 (www.facebook.com/icolumnist)
e-메일 opinionpag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