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얌전하던 일본인이 들고 일어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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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기
도쿄 총국장

낮 최고기온이 33도의 찜통더위였던 지난 16일 오후.

 도쿄 요요기(代<3005>木)공원에 17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다음 달 확정될 ‘2030년 국가 에너지 기본정책’에 ‘원전 제로’를 관철하기 위한 시민 궐기대회였다. 참가자들은 ‘부족한 것은 전력이 아니라 사랑’ 등 저마다 구호가 적힌 깃발을 들고 있었다. 샐러리맨에 주부, 대학생, 가족단위 등 시위와는 무관했던 이들이 대부분. 집회를 주최한 정당이나 시민단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트위터 등을 통해 ‘궐기’를 각오한 보통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다.

 이보다 사흘 전인 지난 13일 도쿄의 일본 총리 관저 앞. 폭 5m정도의 좁은 인도 양쪽으로 15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다. 시위 대열은 수백m 떨어진 가스미가세키(霞ヶ<95A2>) 관청가까지 이어졌다. 일 정부의 원전 재가동 방침에 항의하는 시위는 지난 3월 말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이어지고 있다. 처음 300명에 불과했던 시위 인원은 이제 500배로 불어났다.

 지난해 3·11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 당시 인근 나미에마치(浪江町)에 살다 피폭을 당한 간노 미즈에(60)도 이날 생전 처음으로 시위 대열에 가세했다. 그는 “어렸을 때 종종 엄마에게 ‘엄마는 왜 (태평양)전쟁에 반대를 하지 않았어요’란 물음을 하곤 했다. 이제 난 손자에게 ‘왜 할머니는 원전에 반대하지 않았어요’란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부터 ‘행동’에 나서야 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1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시위에 나선 건 1960년 미·일 안보조약체결 반대시위 때 이후 52년 만이다. 그동안 아무리 정치가 ‘깽판’을 쳐도, 사회부조리가 넘쳐나도 꿈쩍하지 않던 게 일본인이었다. 특파원 생활 하면서 가장 이해 안 되던 일본인의 특성 중 하나였다. 그렇게 얌전했던 일본인이 드디어 들고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은 미동도 않고 있다. 원전유지 방침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난달 말 총리 관저에서 퇴근하던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시위대의 구호를 듣곤 무의식 중에 “큰 소리군…”이라 내뱉었다. ‘국민의 목소리’(voice)를 ‘잡음 소리’(noise)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떠들어봐야 정책은 우리가 정한다”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 민주화는 튀니지의 국화를 빗대 ‘자스민 혁명’이라 불렸다. 요즘 일본의 시위는 ‘반 원전 시위’가 지난 6월부터 본격화된 것을 가리켜 ‘아지사이(자양화·일본에선 ‘6월의 꽃’임) 혁명’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혁명’이란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혁명적이다. 가장 얌전한 국민, 일본인의 궐기는 “어떤 권력도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진실을 새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