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뉴욕 한 달 … 천광청 드라마 해피엔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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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가운데)이 미국 뉴욕에 도착해 아내 위안웨이징(오른쪽)의 부축을 받으며 미소를 짓고 있다. 천이 지난달 19일 가택연금 중이던 중국 산둥성 둥스구촌의 고향집을 탈출한 지 한 달 만이다. 천은 뉴욕대 법대에서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공부할 예정이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뉴시스]

“지난 7년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다.”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41)이 미국에 도착해 처음 한 말이다. 천은 고향인 산둥성 시골마을 이난(沂南)현 둥스구(東師古)촌에서 지난달 19일 탈출을 감행한 지 한 달 만인 19일(현지시간) 유나이티드항공 편으로 뉴저지주 뉴어크공항을 통해 미국에 입국했다. 아내와 두 자녀도 동행했다. 중국어를 구사하는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 직원 2명이 비행기에 동승했다. VIP 통로를 통해 공항을 빠져나온 그는 곧바로 앞으로 머물게 될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의 뉴욕대(NYU) 교직원 주거단지로 향했다.

 학교 측이 마련해 준 승합차에서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내린 그는 환한 표정으로 주변의 환호에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탈출 당시 다친 오른발에 깁스를 한 상태로 목발을 짚었다. 그는 주거단지 한쪽에 마련된 임시 기자회견장에서 “격동의 세월을 보낸 끝에 마침내 산둥을 벗어났다”며 “이 모든 게 지인들의 덕분”이라고 미국 생활을 시작하는 감회를 밝혔다. 그는 이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주중 미국대사관이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해 줬다”며 “미국은 많은 도움과 함께 임시 시민권도 내줬다”고 말했다.

 천은 “중국 정부가 이번 사태에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한 데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중국 정부가 앞으로도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약속을 성실히 지킬 것을 믿지만 본국에 남은 가족들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천의 기자회견은 동행한 아내가 통역했다. 미국행을 도와준 NYU 미국·아시아 법연구소 제롬 코언(Jerome Cohen) 교수도 천의 곁에 있었다. 2003년 미 국무부 프로그램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천을 처음 만난 코언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천 변호사는 언젠가 중국의 간디 같은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천광청의 두 자녀가 19일 뉴욕의 임시 숙소에 도착해 안내를 받고 있는 모습. [뉴욕 로이터=연합뉴스·뉴시스]

 그의 미국행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2005년 중국의 반인권적 산아제한 정책을 폭로했다가 4년3개월 감옥살이를 한 그는 2010년 출옥 후에도 둥스구촌 자택에 연금됐다. 2년 동안의 치밀한 준비 끝에 지난달 22일 밤 감시요원이 물 뜨러 간 사이 뒷문 담벼락을 넘어 탈출했다. 이때 발을 헛디뎌 오른발 뼈가 부서지는 부상을 입었으나 돼지우리 등을 전전하며 17시간을 도주해 경찰의 감시망에서 벗어났다.

 이후 중국 내 인권운동가들의 도움으로 베이징으로 이동한 뒤 지난달 26일 극적으로 미국대사관에 진입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협박과 가족·지인의 안전을 우려한 그는 지난 2일 미국대사관에서 자진해 나와 중국 병원으로 옮겼으나 하루 만에 마음을 바꿔 미 하원 청문회 도중 “미국으로 가길 원한다”고 밝혀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때마침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이 문제가 미·중 간 외교 문제로 비화하자 중국 정부는 4일 망명이 아닌 유학이란 명분으로 천의 미국행을 허용했다. 중국은 유학이란 명분으로 반체제 인사의 출국을 허용해 반인권 국가라는 비난을 모면했고 미국은 자국 대사관에 진입한 반체제 인사를 안전하게 미국으로 데려와 체면을 살렸다. 일각에서 미·중 인권외교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천은 앞으로 NYU 법과대학에 방문연구원으로 등록해 법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코언 교수는 “천은 우선 1년 과정으로 초청했으나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며 “그러나 천은 애국자여서 중국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언 교수는 다만 “중국 정부는 그동안 반체제 인사의 귀국을 허용한 적이 없다”며 “1년 뒤 중국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천광청 탈출부터 미국행까지

4월 19일 천광청, 1년6개월째 가택연금 중이던 중국 산둥성 자택서 탈출

26일 차량으로 추격하는 공안을 따돌리고 주베이징 미국 대사관 진입

27일 중국 인권단체 관계자들, 천의 탈출 공개

5월 2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전략경제대화 위해 베이징 도착
천 “중국에 남겠다”며 대사관 떠나 베이징 시내 병원 입원

3일 천, 미 하원 청문회에 휴대전화 통해 “미국 가고 싶다” 호소

4일 중국 당국 “천광청 미국 유학 원칙적으로 허용” 발표

19일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 도착. 뉴욕대 법대 방문연구원으로 유학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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