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레드 플래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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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좋다. '레드 플래닛'은 여느 SF영화에 비해 속도감과 비주얼 면에서 두드러진다. 빠른 리듬의 테크노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고, 우주선 내부는 마치 미래사회의 일부분을 직접 퍼다 옮겨놓은 것처럼 정교하다. '매트릭스'의 캐리 앤 모스, '히트'의 발 킬머가 등장하는 것도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

'레드 플래닛'은 이처럼 여러 장점을 구비하면서 제대로 된 재미를 끌어내지 못하는 영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발 킬머의 연기는 나날이 퇴보를 거듭하고 있으며 플롯 전개는 다소 엉뚱하게만 보인다. 엄격한 논리가 뿌리를 내리고 영화 전체를 튼실하게 받쳐줘야할 터인데, SF 장르로서 기본이 다소 부실해보이는 것이다.

서기 2025년의 지구. 자원고갈로 인해 지구에선 더 이상 인류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태가 도래한다. 국제연합은 새로운 생활터전을 위해 '화성 식민지화 프로젝트'를 출범시킨다. 화성 식민지화의 일환으로 진행중이던 연구에 이상이 생기자,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탐사대가 구성된다. 지휘관인 케이트는 탐사대원들을 이끌고 우주선에 탑승한 뒤 긴 여정을 시작한다. 탐사선 고장으로 본선에서 분리된 셔틀이 화성에 불시착하고 대원들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탐사로봇 에이미가 대원을 공격하고, 산소부족으로 고통을 받는 등 대원들은 극한 상황에 몰린다.

'레드 플래닛'이 볼거리를 갖춘 점은 확실하다. 카메라는 화성의 표면과 우주 공간을 오가며 삶의 극한으로 내몰리는 우주비행사들 여정을 포착한다. 여기에 기계 로봇의 반란과 대원들간의 사투가 가세하면서 영화는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레드 플래닛'의 안토니 호프만 감독은 원래 CF 감독 출신이다. 나이키와 닛산, 아메리칸 에어라인 등의 광고를 도맡아 제작한 그는 상업광고물 제작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아마도 안토니 호프만 감독에게 감사해야 할 인물은 캐리 앤 모스 아닐까. 이미 '매트릭스'에서 만날 수 있었듯, 미끈한 자태와 이목구비가 또렷한 캐리 앤 모스의 개성은 '레드 플래닛'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다. 단, 연기력이 향상되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레드 플레닛'에서 눈에 띄는 것은 매끈한 형태로 디자인된 우주복이다. 중세의 갑옷과 우주복을 합쳐놓은 듯한 우주복은 여느 SF 영화의 그것에 비해 탁월하다.

영화는 중반까지 그럴듯하게 진행된다. 압권이라고 꼽을만한 장면은 로비 갤러거 등 대원들이 산소부족으로 거의 질식사 상태로 몰리는 대목. 보는 이의 숨이 콱 막힐 정도로 사실감이 배어난다.

그런데 점차 이야기가 엉뚱하게 흐른다. 화성이 지구와 유사한 상태로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는 탓에 비행사들은 더 이상 호흡 문제로 고통받지 않아도 괜찮다. 게다가 로봇은 이 가엾은 대원들을 향해, 그들 명령을 거역하고 무차별한 반란을 꾀한다. 왜? 글쎄... 거의 제대로 된 설득력이라곤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해외의 평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하다. 평론가 오웬 글리버맨은 "몇십년전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SF 영화 중에선, 최소한 최고작이라고 말할 영화들 중에선 독창적이고 사색적인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 있었다"라고 한참을 돌아 설명했다. 바꿔 설명하자면 '레드 플레닛'엔 이런 요소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수작 SF 영화들은 시각효과가 엉성하고, 요즘 시각에서 보자면 치졸한 구성의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금지된 행성'이나 '괴물'처럼, 인간 본성에 대한 스케치나 장르적 쾌감을 주는 작품은 있었다는 의미다.

'레드 플레닛'은 SF에서 스릴러로, 그리고 멜로물로 껑충껑충 도약을 시도하고 있지만 관객을 흥분시키고 사로잡기엔 역부족이다.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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