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최고 권좌 올랐지만 … 축포 불발 ‘우울한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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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가운데)이 13일 북한 평양 만수대 언덕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상 제막식에서 허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고 있다. 김정은 왼쪽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오른쪽은 최용해 당 정치국 상무위원(왼쪽 사진). 김정일 동상(오른쪽)은 높이 20m의 김일성 주석 동상과 나란히 세워져 이날 처음 공개됐다. [평양 AP=연합뉴스]

김정은의 권력세습이 형식적으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13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칭하고 자신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됐다. 이틀 전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자신은 ‘당 제1비서’가 된 것과 같은 패턴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후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 회의에서는 조선노동당 제1비서이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시며 조선노동당과 인민의 최고영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하였다”고 보도했다. ‘광명성 3호’ 발사를 실패했다고 인정한 지 6시간 만이었다.

 명칭 자체는 김정일에 못 미치는 듯하지만 핵심 요직은 모두 차지했다고 봐도 된다. 이로써 김정은은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후계자로 내정된 지 1년7개월, 김정일 사망 후 118일 만에 당(당 제1비서)·정(국방위 제1위원장)·군(최고사령관)의 최고직을 형식상으론 모두 거머쥔 셈이다.

 하지만 국가수반에 오른 것과 권력을 장악한 것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장거리 로켓 발사 실패로 그의 권위는 최고직을 맡자마자 구겨졌다. 축포(로켓)가 실패하면서 그의 최고 권좌 등극은 우울한 잔치가 된 셈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로켓 발사 책임자의 숙청, 핵실험 등으로 돌파구를 모색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은 또 자신의 권력기반이 확립될 때까지는 김정일의 유훈에 의존해 통치할 것으로 보인다. ‘사자(死者)의 통치’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정은은 11일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당 총비서로 영원히 추대한 데 이어 13일 국방위원장까지 당과 국가의 최고 수위를 ‘영구 결번’으로 남기면서 김정일 신격화를 꾀했다.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 사망 후인 1998년 헌법을 개정해 ‘주석’직을 폐지하고, 그 밑에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국가수반으로 사실상 격상시킨 전례를 밟은 셈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라고 하면 2010년 사망한 조명록을 떠올리게 하니까 제1위원장이란 직위를 신설한 것일 뿐”이라며 “수령에 대한 효성과 충성심을 과시하면서 모범을 보이고 동시에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하는 상징조작”이라고 말했다. 전 지도자를 부정하지 못하는 북한에서 새 직책을 만들며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얘기다.

 ◆외신기자들 발사 장면 못 봐=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소식은 평양에 초청됐던 외신기자들에게 사전 통지되지 않았다고 AP·AFP통신 등이 13일 보도했다. 발사가 성공한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영국·중국 등 19개국 60여 명의 기자단은 8일 북한 철산군 동창리에 위치한 발사기지를 참관한 데 이어 11일 평양 교외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방문했다. 하지만 정작 로켓이 발사된 13일에는 평양 양강도 국제호텔에 머물렀다. 전날 마련된 호텔 내 프레스센터도 발사 당시엔 비어 있었고 대형 모니터도 꺼져 있었다. 외신기자들은 호텔 방 안에서 영국 BBC와 일본 NHK 위성방송 등을 보며 로켓 발사 실패 뉴스를 접했다. 외신들은 평양 시민들이 로켓 발사 사실을 모르는 듯 평소처럼 등교하거나 출근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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