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서 돈 받아 룸살롱에 투자한 ‘투캅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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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계 출신의 이모(42·구속) 경사가 서울 시내 유흥업소 수십 곳으로부터 총 50억원을 상납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같은 곳에서 근무했던 한모(43·구속) 경사도 거액을 건네받았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들이 유흥업소에 지분 투자까지 했다는 진술도 있어 검찰의 수사 확대가 불가피해졌다.

 3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최근 ‘룸살롱 황제’로 불리는 유흥업소 운영자 이경백(40·수감)씨 등으로부터 “한 경사가 유흥업소 수십 곳으로부터 매달 수백만원씩 상납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한 경사에 대한 상납 의혹을 받는 곳은 삼성동 N업체와 F업체, 강남역 인근의 D업체와 B업체, 신사역 부근의 A업체 등이다. 서울 교대역 인근에 있는 안마시술소 10여 곳도 한 경사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해 온 곳들로 지목됐다.

 한 경사는 지난 1일 이 경사, 박모 경위, 장모(44) 경위와 함께 이씨로부터 총 2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앞서 검찰은 이씨로부터 “한 경사뿐 아니라 이 경사도 서울 시내 유흥업소 수십 곳으로부터 한 곳당 매달 200만~1000만원씩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아왔고 상납받은 자금 총액이 50억원에 이른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 경사는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10년간 근무했고, 한 경사는 서초경찰서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관내 대형 유흥업소들과 유착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박 경위, 장 경위와 함께 2006년 무렵부터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계에서 서울 시내 유흥업소 단속 업무를 맡았고 현재 모두 여성가족부에 파견 근무 중이다.

 이씨와 유흥업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경사는 서울 강남 지역에 A업체 등 서너 곳의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는 이모씨의 업체에, 한 경사는 삼성동 룸살롱 N업체에 지분투자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이 거액의 배당금을 챙겼는지도 조사할 방침이다.

 ◆‘악어와 악어새’ 생생한 증언들=이씨와 유흥업소 관계자들은 검찰에서 경찰관들에 대한 상납 경위와 상납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증언했다. 이씨에 따르면 이 경사는 2007년 “업소에 대한 신고가 접수됐다”며 이씨를 만나자고 요구했다. 이씨는 업소 근처에 있던 이 경사의 자동차 안에서 그와 박 경위를 처음 만났다. 당시 이 경사는 “네가 똑똑하고 (경찰관들한테) 잘한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잘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씨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이 경사는 박 경위와 웃음을 주고받은 후 “1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고, 이씨는 즉시 돈을 구해 그들에게 줬다는 것이다.

 경찰관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수시로 보여줬다고 검찰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씨는 “이 경사 등 경찰관들과 골프를 함께 쳤을 때 그가 그 직전에 단속했던 업소를 언급하면서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그 업소 정말 화끈하게 단속했지’라고 큰 소리로 떠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유흥업소 관계자는 “대대적인 단속은 말할 것도 없고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신고가 들어왔다’며 영업 중인 업소에 수시로 드나드는 등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업소를 망하게 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업소 입장에서는 ‘관치기(경찰관들에 대한 정기 상납을 일컫는 속어)’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경사 등이 ‘관치기’ 대가로 업소들을 단속에서 제외시켜 주거나 경찰의 단속 정보를 미리 알려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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