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은행에 강한 신뢰 … 시장은 떨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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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크게 떨지 않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인 20일 금융 시장은 비교적 굳건한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일단 안정세를 찾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날 급락했던 주가와 원화가치는 반등했다. 20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6.13포인트(0.91%) 오른 1793.06으로 마감했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도 전날보다 12.60원 상승해 1162.20원을 기록했다.

 한국 정부의 신용위험을 국제 사회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날 뉴욕 장외시장에서 한국 정부가 발행한 5년 만기 외화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68bp(1bp=0.01%포인트)로 마감했다. 전 영업일(16일)에 비해 9bp가 상승했지만, 지난해 천안함(5월 20일)·연평도(11월 23일) 사태 당일엔 각각 22bp·29bp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북한 문제가 시장을 오래 발목 잡은 경우가 없었다는 학습 효과 때문에 시장이 빠르게 회복됐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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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사회는 한국 정부보다 대기업·금융회사에 더 강한 신뢰를 보였다. 대부분 기업의 CDS프리미엄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일부는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삼성전자(118bp)·한국전력(181bp)·하나은행(201bp)·국민은행(200bp)·신한은행(210bp) 등은 CDS 프리미엄이 지난 주말 이후 변동이 없었다. 포스코는 210bp에서 207bp로 되레 하락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경제연구실장은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수출 주도형이기 때문에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 사회의 시각”이라며 “이런 기업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신뢰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발행한 외화채권은 거래 자체가 많지 않아 CDS프리미엄만으로 기업의 신용위험을 따지는 건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인호 전 경제수석(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은 “필요 이상의 과잉반응을 보이며 위기감을 조성할 필요가 없다”며 “단기적으로 영향을 받겠지만 이번 사태가 북한의 개방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외환시장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 중앙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는 환율 급변동 등 외환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시장 안정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시장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을 뿐 언제 출렁일지 모른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상무는 “한국 경제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불확실성의 재료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라며 “향후 북한 사회의 권력 구조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는 점에서 장기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 관계자는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 등으로 향후 금융시장이 출렁거릴 수 있다”며 “북한 변수 못지않게 유럽 재정위기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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