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도시 근교에서 자연과 벗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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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컴퓨터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될까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지금 내 꿈은 우리 학교에서 제일 가는 컴퓨터 게임 왕이 되는 것이다. 일요일은 일주일 가운데 컴퓨터 게임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날이다."
- 〈어진이의 농장 일기〉8쪽에서

아이야, 네 이야기가 아니야. 너와 비슷한 신도시에 사는 한 아이의 글이야.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한 번 꼽아보겠니?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 '롤플레잉 게임, 드로이얀' '인터넷' '채팅' ……. 뭐 그런 것 아니겠니? 그게 모두 방 안에 틀어박혀서 컴퓨터 앞에서 하는 일이지. 그거 말고 신나는 일이 또 없을까? 어린 시절의 중요한 시간들을 그 컴퓨터에 모두 쏟아붓는다는 게 어쩐지 찜찜해서 하는 말이야.

아이야, 그래서 오늘은 위의 글로 시작되는 책 〈어진이의 농장 일기〉(창작과비평사 펴냄)를 함께 읽어봤으면 한다. 이 책은 네가 이미 봤을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책 〈하느님의 눈물〉(산하 펴냄)에 그림을 그리셨던 신혜원 선생님이 만드신 책이야. '어진'은 신혜원 선생님의 아들 아이 이름이고, 이 책은 어진이네 가족이 주말마다 집 가까운 곳의 밭에 나가 농사를 지었던 1년 동안의 이야기를 어진이의 일기 형식으로 만든 것이야. 어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되던 해 봄에 시작해서 다음 해 봄까지의 한햇동안의 이야기야.

이 책을 만드신 신혜원 선생님은 원래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셔서, 어진이의 일기 안에는 재미있는 그림들이 많이 나온단다. 어진이에게는 '슬기'라는 이름의 귀여운 여동생이 하나 있어. 어진이의 일기를 우습게 해 주는 주요 인물 중의 하나지. 그 아이 하는 짓이 참 재미있어. 가족들이 밭을 만들어 상추, 열무, 배추, 감자, 고추 등을 심으려고 하자, 슬기는 '사탕'을 심자고 앙탈을 부리기도 하고, 일하는 가족들 곁에서 자기도 거들겠다며 앙탈을 부리는 그림을 보면서는 웃지 않을 수가 없더구나.

아이야, 요즘 우리가 사는 아파트라는 곳이 참 답답하지 않니? 너희들은 그 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 지내지만, 너희들과 달리어떻게든 도시를 떠나 자연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어른들은 참 많단다. 그 분들은 시골로 아주 떠날 상황이 안 되면, 우선 도시 주변에 아주 작은 텃밭이라도 만들어 스스로 채소를 심고 가꾸고 싶어하는 거야. 그 분들의 생각이 이른바 '주말농장'이라는 걸 만든 거지.

'주말농장'은 일주일 동안 직장 생활을 하는 어른들이 집에서 쉽게 갈 수 있는 빈터를 조금씩 나누어 맡은 뒤 밭으로 일구어서 자신들이 준비한 씨앗을 심고 채소를 가꾸는 곳을 말하는 거야. 어진이네 가족들도 그런 생각으로 주말농장 일을 시작하게 된 거지.

이 책에는 어진이가 주말농장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농사 지식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단다. 즉 농사법을 잘 정리한 거지. '씨 뿌리는 방법'에서부터 '모종하는 법', '고추 순지르기', '무 배추 갈무리법' 등 농사에 필요한 상식들을 그림과 함께 잘 정리했단다. 또 밭 주위에 있는 들꽃이나 밭에서 볼 수 있는 곤충들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어서 너희들 자연 공부에도 도움이 되겠더구나. 게다가 너희들 교과서처럼 근엄한 말투로 가르치듯 설명하는 게 아니라, 어진이가 전혀 몰랐던 농사 상식을 하나 둘 깨우치는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어진이네 식구들은 작은 밭이지만, 주말마다 열심히 일구어서, 가지나 배추, 상추, 감자 따위를 손수 기른 것을 먹게 된단다. 그건 참 멋진 일 아니니? 내가 먹을 것을 내가 손수 길러서 먹는다는 것 말이야. 잘 길러서 내가 먹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필경 더 정성을 기울일 것이 당연하겠지. 농약이나 화학 비료 따위는 쓰지 않을 게 당연하고 말야. 그렇게 내 손으로 정성껏 길러낸 야채의 맛이라니.

혹시 추석이나 설날에 네가 송편이나 만두를 빚었던 일 생각 나니? 네가 빚은 걸 표나게 하느라고 일부러 한쪽이 툭 불거지게 만들어놓고는 밥상에 그것들이 올라오면 식구들 그릇을 뒤적여가면서 네가 만든 송편이나 만두를 찾아내느라고 법석을 떨었던 일 말이다. 그렇게 애써서 찾아낸 네가 만든 만두나 송편이 가장 맛있다고 하지 않았어?

잠깐 동안 만두를 빚기 위해 애썼던 일조차도 네게는 기쁨이었던 모양이지? 그런데 생각해 보거라. 채소를 한번 키워서 먹기 위해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일을 해야 먹을 수 있잖니. 즉 내가 먹을 채소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한해를 꼬박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잖아. 그러니 그건 또 얼마나 맛있겠어.

아이야, 우리는 시골의 외할머니가 손수 지으신 배추로 김장을 담그고 있잖니? 허리가 다 꼬부라진 외할머니께서는 한햇동안 우리가 먹을 배추를 기르시느라 온갖 정성을 다하시는 거야. 그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배추는 다른 김치보다 훨씬 맛있고, 외할머니의 정성을 담뿍 느낄 수 있는 거란다.

농사는 아주 쉬운 일도,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란다. 자연은 정해진 규칙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하듯 어떤 확고한 원칙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단다. 단지 가장 기본적인 상식 정도만 가지고 자연에 성실한 태도로 성심껏 돌보아 주면 채소들은 잘 큰다고 이야기들 하시더라. 어른들도 농사를 처음 짓는 사람들은 직장 일이나 다른 일에 워낙 바빠서 성실하게 보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뿐만 아니라, 앞에서 이야기한 아주 기본적인 상식 정도를 몰라서 농사를 망치는 경우도 흔히 벌어진단다. 이 책은 네가 읽으면 좋을 책이지만, 어른인 내게도 참 좋은 책이야. 나도 몰랐던 농사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들을 그림을 섞어 보여주고 있으니 실제로 우리도 주말농장을 하게 된다면 꼭 참고해야 할 책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어때. 아이야. 우리도 주말농장 하나 가꿔볼까?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이 글에서 이야기한 책들
* 어진이의 농장 일기 (신혜원 짓고 그림, 창작과비평사 펴냄)
* 하느님의 눈물 (권정생 지음, 산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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