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사실 확인도 않고 …‘FTA 괴담 소설’ 퍼나르는 정동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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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지난달 29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비준안 서명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진
정치부문 기자

한·미 FTA 무효화 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정동영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FTA를 막은 실제 사례’라면서 에콰도르의 예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에콰도르는 국민적 저항이 폭발하면서 루시오 구티에레스 대통령이 축출되고 새로 등장한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결국 국민 앞에 굴복해 (비준된) FTA를 ‘파기’했다. 에콰도르도 했는데 한국 국민이 못해낼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앞서 정 최고위원의 트위터에는 지난달 26일 “에콰도르 국민은 비준된 협정을 무산시켰습니다”는 글이 올라 왔다. 아이디 ‘eyey0311’이라는 트위터리안이 올린 글이었다. 이에 정 최고위원은 “mb(이명박) 대통령도 서명 말라!”고 리트윗으로 화답했다.

 정 최고위원 주장처럼 에콰도르에선 정말로 국민이 대통령을 ‘축출’하고 비준된 협정을 무산시킨 일이 있었던 걸까. 확인 결과 정 최고위원의 언급 중 ‘사실’인 부분은 구티에레스 대통령이 물러난 것 딱 하나뿐이었다. 우선 에콰도르와 미국은 FTA를 비준한 일이 없다. FTA가 비준도 되지 않았는데 그것의 ‘파기’를 위해 국민이 들고일어났다는 얘기인가. 국민이 들고일어날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국민이 대통령을 축출시키나. 한마디로 말이 되지 않는 얘기였다.

 두 나라가 FTA 협상을 벌였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그건 에콰도르가 아닌 미국의 선택 때문이었다. 미국은 에콰도르 정부가 미국 석유회사 옥시덴털과의 사업계약을 취소하고 이 회사 자산을 압류한 것에 항의해 2006년 5월 에콰도르와의 FTA 협상을 중단했다. 에콰도르의 새 대통령이 국민의 압력을 받아 비준된 FTA를 파기한 게 아니라는 거다. 구티에레스 전 대통령이 축출된 이유도 딴 데 있다. 그는 자신을 부패 혐의로 탄핵하려 했던 대법관 27명을 면직한 게 국민적 저항을 불러 물러나야 했다. 정 최고위원은 집권여당 대표와 장관, 일국의 대통령 후보를 지낸 인사다. 그런 비중 있는 정치인이 트위터에 올라온 ‘확인 안 된 사실’, 아니 거짓을 동료 의원들에게로 퍼나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정 최고위원은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나 정정(訂正) 대신 “말은 (FTA) 협정 중단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파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 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사실상 승리’라고 했던 일이 연상된다.

허진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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