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감' 확인한 테헤란밸리 국회상임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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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님들이나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말고 제발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마리텔 장인경사장) "국회가 현장으로부터 그동안 너무나 멀리 있었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민주당 정동영의원)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위원장 이상희) 가 19일 오후 국내 벤처기업의 산실인 서울 강남의 테헤란밸리를 찾아 벤처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간담회가 열렸다. 이번 간담회는 헌정사상 초유의 현장 국회 상임위원회 성격을 띠고 있어 간담회 장소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통프리텔 본사 17층 회의장에는 업계 관계자들과 취재진들이 몰려 전례없는 광경을 관심있게 지켜봤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벤처기업인들과 국정 현안에 매달려 여의도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국회의원들간에 어떠한 대화가 오갈 것인지 처음부터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간담회가 진행되면서 양측이 서로 느끼는 심정적인 거리와 벽은 역시 멀고도 높았다는 것을 새삼 증명했다.

이 위원장은 간담회 개회사를 통해 "국회가 다소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치적인 차원을 넘어서 벤처기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이번 행사의 의의를 강조했지만 이어지는 벤처사장들의 발언에는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신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첫 발언자로 나선 비씨큐어의 박성훈 사장은 "사회는 현재 정보화의 물결속에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지만 국회의원들은 아직도 산업화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사장은 "정치권에서 각종 정보화 촉진과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법을 만들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정작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마인드가 제대로 돼있지 않다는 데 있다"며 "이 상태에서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땜질식으로 법을 만드는 것이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날 유일한 여성 벤처기업인인 마리텔의 장인경 사장은 "여러가지 할 말은 많지만 간단하게 말하겠다"고 운을 뗀뒤,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장사장은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지금 삐걱거리는 이유는 벤처기업의 총론적인 부문에 대해 정부와 공공기관들의 지나친 관심 때문"이라며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규칙을 정하는 정도인데 지나치게 개입하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사장은 "이러한 정부나 공공부문의 지나친 관심과 개입으로 인해 벤처가 유행처럼 들끓었다가 사라짐으로써 결국 국민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며 "벤처기업들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면서 내실을 기하는 냉각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제발 그대로 내버려 달라"고 요구했다.

장사장은 "산업역군인 20대들이 외국에서 한창 제품 개발과 판매에 열중하고 있는데 병역에 묶여 2개월에 한번씩 여권을 바꾸러 국내에 들어와야 한다"며 "외국에도 국가기관이 파견돼 있는데 정부는 이런 것이나 고쳐야 된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이처럼 벤처업계의 현실을 걱정하는 발언도 있었지만 참여자중 일부는 IMT-2000사업자 선정과 관련, 자신의 이익을 겨냥한 요구성 발언으로 일관해 눈살을 찌뿌리게 했으며 일부 사장들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추상적인 얘기로 슬쩍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정치인들은 벤처기업 사장들의 발언이 끝날때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예를 들어달라며 추가 질문을 하거나 나중에 서면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청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 의원은 "현장에 나와보니까 벤처기업인들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크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며 "생색내기 위한 제스처보다는 수시로 벤처기업인들을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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