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소재로 삶의 의미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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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작가겸 번역가인 이윤기(53)씨는 독특한 인물이다.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했지만 70년대 작가라고 할 수 없다.

그는 20년간 번역에 몰두하며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했고, 90년대 중반이후에야 본격적인 작가활동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작가들이 보여주는 사소한 일상에 매달리기보다 삶의 의미를 찾는 전통적 기능에 충실하다.

그가 지난 3년간 썼던 중.단편을 모아 내놓은 소설집〈두물머리〉 (민음사)는 독특한 글쓰기를 잘 보여준다. 우선 작품의 소재가 매우 다양하다.

중편〈진홍글씨〉는 작가가 중년부인의 입장이 되어 쓴 여성중심의 작품이다.

부부사랑을 한참 그려가다가 남편의 외도로 확 반전되는 장면이 전통적 글쓰기에 해당될 것이다.

〈세 동무〉는 중년남자가 친구 동생인 비구니의 암자를 찾아나선 얘기인데, 선(禪)소설 같은 느낌을 준다.

한적한 산골 암자를 배경으로 이어지는 선문답 같은 대화는 깔끔한 동양화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서양의 신화를 강의하면서도 동양적 철학을 늘 강조해온 작가의 무덤덤한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동양적 철학, 자연주의적 성향과 잘 어울리는 또 다른 작품은 〈울도 담도 없는 집〉이다.

주인공이 등대지기만 사는 '가물도' 라는 섬에서 보낸 며칠간의 얘기를 통해 자연주의적 삶과 원초적 생명력을 잔잔히 그려가고 있다.

작가는 미국 미시간주립대 국제대학원 초빙강사로 미국을 오가며 생활해왔는데, 최근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강사직을 버렸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설가가 되길 원했는데 지금까지 잘 안됐어요. 이제는 진짜 창작에 전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해온 번역이란 게 남의 창작을 재생산하는 것이고, 강의 다니는 일도 '작품으로 말하는' 작가라는 본분과 맞지않아요" 라며 창작 열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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