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선 했는데 여의도선 못하는 MB의 FTA 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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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호소하려던 이명박(얼굴) 대통령의 계획이 24일 야당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미국 의회에서도 한 연설을 한국 국회에선 못하게 된 것이다.

 박희태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24일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와 만나 이 대통령의 국회 연설 여부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박 의장과 황 원내대표가 초청하는 형식으로 28일 본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김 원내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 박정하 대변인은 “여야가 합의해 초청해주면 28일이 아니라도 언제든 국회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입장을 바꿔 이 대통령을 초청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민주당 김유정 원내대변인은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서 설명하는 대통령 시정(施政) 연설을 (올해를 포함) 3년간 내리 국무총리에게 대독을 시켜놓고 한·미 FTA 문제는 국회에 와서 얘기한다는 건 한마디로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학규 대표도 “대통령이 국회에 와서 말로 설득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말이 아닌 실천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미국 의회에서 한·미 FTA가 발효될 때 필요한 이행법안이 처리된 직후 상·하원 합동연설을 했던 이 대통령으로선 정작 ‘안방’인 국회에선 연설을 못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이 대통령의 국회 연설 추진과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FTA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작한 일을 이 대통령이 마무리하려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은 미 의회의 FTA 이행법안 처리 과정을 지켜보며 소통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17~18일 국회의장단과 여야 대표, 국회 상임위원장들과 잇따라 오찬을 함께하며 설득했고, 22일엔 김진표 원내대표와 홍재형 국회부의장 등 야당 중진 5명에게 직접 전화도 걸었다.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1980년대 이후 16차례 실시됐다. 개회식·예산안과 관계없는 주제로 이뤄진 건 9차례였다. 9차례 중 두 차례 연설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아프간 파병 동의안 처리를 요청하며 국회에서 “(여야 의원) 여러분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해나가기 어렵습니다. 필요하면 국회에 찾아와서 여러분들과 대화하고 여러분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여러분이 국민의 대표로서 당당하게 소신을 가지고 국민의 운명을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호소했었다.

 한편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와 지식경제위원회는 24일 한·미 FTA 이행법안 14건을 상정했다.

고정애·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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