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남북방문 예고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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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에워싼 주변 4강의 움직임이 매우 분주하다. 5월 말부터 따져도 한.일 정상회담, 김정일 북한 총비서의 중국 방문, 미.러, 한.미, 한.일, 미.일 정상회담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7월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중국.북한.일본과 한국을 잇따라 방문한다. 최근의 이 모든 정상회담에선 한반도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거나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같은 움직임은 우선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 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듯하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주변 열강이 한반도에 감 놔라 배 놔라 했던 구한말이나 1945년 해방 직후를 연상하기도 한다.

둘째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뒤에 정렬하고 미국과 일본이 한국의 뒤에 서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과 수교하면서 지난 10여년간 상대적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소홀히해 왔다. 그런 3국이 다시 전통적인 관계를 회복해 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중.러는 북한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회복해가면서 다른 한편으론 한국과 쌓아온 관계도 해치고 싶지 않은 눈치다.

북한 金총비서의 방중 직후 중국 당국이 한국측에 회담 내용을 전하면서 성의를 다했던 모습에서 중국의 그런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러시아의 경우 이미 미하일 고르바초프나 보리스 옐친 등이 옛 소련과 러시아의 국가수반으로 한국을 방문했지만 북한은 한번도 가지 않았다.

반면 푸틴의 북한 방문은 러시아 국가수반으로서는 사상 처음이다.

푸틴의 이번 방북의 최대 목적은 중국으로 기우는 듯한 북한을 잡아당겨 두려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한국과 공조를 다짐하는 일.미는 북한과 수교.미사일 협상을 각각 벌이고 있다.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할 계획이다. 일본도 한국에 북한과의 수교협상을 도와달라고 말하고 있다. 한.미.일 3국 대표들은 만날 때마다 공조와 협조를 강조한다.

그럴 때마다 다른 한편에선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볼 때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가 어떻게 풀려 나갈지는 결국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남북 정상들의 크고 활달한 생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푸틴의 방북은 러시아가 한반도 정세 변화에 더 이상 국외자가 아니라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반면 북한은 본격적인 대외개방을 앞두고 체제불안을 느끼는 한편 '국제사회의 탕자' 란 꼬리표를 떼고싶어 한다.

푸틴의 방북은 북한의 그런 욕구를 해소해주는 효과가 있다. 반면 러시아는 방북으로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설득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북.러 양자관계의 급진전이 한국에 꼭 부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만이 주변 4강과 국교를 맺고 북한은 주변 2강에 소외되는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순 없다.

조만간 이뤄질 북.미, 북.일 수교에 대비해 주변 4강과의 균형적 외교의 틀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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