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한국종금 회생 '남북회담 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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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종금업계 처리와 관련, '직접적인 정부지원은 일절 없다' 는 원칙을 밝혔다.

이런 원칙은 대우에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물린 뒤 차례로 쓰러진 나라.영남종금 처리에서 분명히 지켜졌다. 시장에선 두 종금사 예금을 정부가 모두 물어주면 그만큼 국민 부담이 커진다며 지원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한푼도 보태주지 않고 의연히 원칙을 지켰다.

그런 정부가 8일 한국종금에 후순위채권 1천8백80억원을 사주는 등 2천8백28억원의 자금지원을 결정했다. 재경부는 9일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인데다 대주주인 하나은행의 회생의지가 강해 한국종금을 살리기로 했다" 고 지원 배경을 설명했다.

불과 나흘전인 지난 5일 오전까지 지원대책을 묻는 기자들에게 금감위 관계자는 "종금사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 살 길을 찾거나 그렇지 못하면 시장원리에 따라 정리될 것이다. (자꾸 지원하면)부실 금융기관들이 정부의 지원만 바라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생긴다" 며 '시장원리' 와 '지원불가 원칙' 을 되풀이했었다.

그러나 5일 저녁 정부의 지원방침이 결정되면서 한국종금의 운명은 '사망' 에서 '회생' 으로 급선회했다. 재경부.금감위 실무진은 밤늦게 회의를 거듭한 뒤 "기업자금난 해소와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란 석연찮은 이유로 한국종금 회생 수순을 밟았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종금의 부도는 곤란하다는 청와대의 강력한 메시지가 관계부처에 전달됐다" 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을 뒷받침하듯 환란(換亂)이후 22개 종금사가 문을 닫는 동안 한푼도 돌려주지 않았던 금융기관들의 예금을 하나은행에만 내주면서까지 정부는 한국종금 살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똑같이 대우 때문에 위기에 몰렸지만 나라.영남종금에 비해 한국종금은 위기를 맞은 시점이 좋아 살아났다" 는 G증권사 종금담당 애널리스트의 분석에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한국종금은 살아났지만 대신 정부의 '원칙' 이 죽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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