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IT] 벤처, 거품 걷히면 진가 드러난다

중앙일보

입력

닷커미즘에 대한 믿음 하나만 갖고 벤처의 정글로 몸을 던진 사람들은 미국에도 수없이 많다.

대기업의 화려한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들은 커피 한 잔 살 돈 없지만 멋진 꿈을 갖고 있는 닷컴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와 손을 잡고 행복한 희망을 키웠다.

그러나 이들 닷컴 신봉자가 요즘 헷갈리고 있다. 닷컴회사들은 그동안 수많은 날들을 애태운 끝에 몸집을 키운게 사실이다. 그래서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이러다간 온라인회사들이 오프라인회사들을 다 사버리겠어. "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고 있다.

인터넷회사라는 명함만 들이대면 들어오던 돈들이 이제 사라진 듯하다. 심지어 사람들은 이제 신(新) 경제의 꿈을 거두고 구(舊) 경제 체제로 회귀해야 하지 않을까 고려하고 있다. 물론 이 반혁명으로 가는 길을 연 것은 ''폭락 증시'' 다.

한국의 경우는 더 특별하다. 지난주 발표된 코스닥 등록법인 3백63개사의 1분기 영업실적을 통해 벤처기업들의 허와 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 벤처기업들의 영업수지는 대부분 적자였다. 미국에서 99년 한 해 동안 벤처자본가들은 20억달러의 투자금을 1천8백여 회사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지난 해 주식을 상장한 회사들의 주가는 상장때에 비해 지금은 반토막난 상태다. 뿐만아니라 지난 3월 10일부터 현재까지 13건의 주식상장이 연기 내지는 취소됐다.

올해 상장을 해 엄청난 주가를 기록했던 바이닷컴(www.Buy.com)이나 펫츠닷컴(www.Pets.com)은 현재 상장가의 50%와 30%에 거래되고 있다.

바이닷컴은 물건은 잘 팔되 돈을 못버는 경우. 광고를 통해 수입을 만회해 보겠다는 사업전략을 갖고 있지만 투자가들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

펫츠닷컴은 오프라인의 강자인 페토피아(Petopia) 나 페츠마트(Petsmart) 사이에 끼여 고전을 하고 있다.

때문에 이전에 자랑스럽게 내달던 닷컴이란 어미(語尾) 가 꼬리를 감추고 있다. 닷컴이란 이름을 달았다가는 혹시 꿈만 먹고 사는 벤처 중 하나로 오인될까 봐 그렇다고 한다. 대신 오프라인 기업들은 경쟁력을 다시 과시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인 에스티 라우더는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화장품 전자상거래업체인 글로스(www.Gloss.com)를 사들였다.

거대 소매상인 토이스러스나 월마트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온라인 상가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 원하는 대로 가게들을 인수할 수 있게 됐다.

인수와 합병, 줄어든 닷컴 주자들과 그들의 광고, 그리고 제한된 소수의 주식상장. 이런 현상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불과 몇 년 전의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시스코 같은 회사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님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수년 간에 걸친 땀과 피와 눈물 덕에 거대기업이 된 것이다. 진실로 인터넷을 이해하고 땀 흘리는 진정한 벤처들에게는 지금처럼 거품이 걷히는 것은 희소식이 될 것이다.

이젠 진짜만이 드러날 차례이기 때문이다.

신성희 뉴욕 퀀텀리서치 대표 sunghee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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