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종의 미술 투자] 역발상의 여백 … 왜 정상화를 얘기하지 않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지점장

“그림 사면 잘 감상하다가 돈도 벌지 않을까?” 묻기는 쉽지만 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언제나 정규 분포 안에서는 소리가 크지 않다. 유의 수준 밖에서의 소리는 크게 들리게 마련이다. 주식의 경우에는 떼부자가 된 사람과 망해서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소문만이 나돈다. 유의 수준 밖의 이야기만 우리는 듣고 있는 것이다. 미술시장도 마찬가지다. 300만원을 주고 산 권순철의 그림이 3년이 채 안 돼 6600만원에 경매에서 팔리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산 가격보다 싸게 내놓아도 안 팔릴 수 있는 것이 미술시장이다. 거기다 경제학의 원론적 지표와 통계도 잘 통하지 않으니 누구의 이야기를 듣느냐에 따라 행동정책이 바뀌는 매우 불안정한 시장이다. 엔트로피가 높은 불안정성은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이익을 암시하기도 한다. 문제는 언제나 종목 선택이 아닐까.

  답은 문제 안에 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우선 ‘잘 감상’해야 한다. 시장의 흥망성쇠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미술품 투자의 고수’(이런 사람은 없다)가 되려 하지 말고, 미술품 컬렉션의 다양한 측면을 즐길 줄 아는 ‘이상적 컬렉터’(이런 사람은 있다)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상적 컬렉터는 끊임없이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이 물음이 반복될 때 좋은 작품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겨나며 그 결과로 자본이득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당신은 예상치 못한 많은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또 남이 발견하지 못한 보물을 먼저 발견한다면 승리의 확률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정상화의 ‘작품 73-A-34’

오랫동안 내가 눈여겨봐 오고 있는 보물은 정상화(79)의 그림이다. 미니멀리즘이나 모노크롬이 현대미술에 등장하고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성, 혼란스러움, 불확실성, 그로 인한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동양적 여백의 의미를 공간을 틈입하는 몇 개의 점으로 새겨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우환을 일찍이 눈여겨본 사람들은 크게 실패하지 않았다. 이우환과는 정반대로 정상화의 그림은 터럭 하나도 더 세울 수 없이 밀도가 높다. 원천적으로 어떤 틈입도 허용하지 않는다. 캔버스에 수없이 한지와 고령토를 떼었다 붙였다 반복해 완성된 화면은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복잡한 것을 단순한 여백으로 보이게 한다. 정상화의 그림은 역발상의 여백의 아름다움이다. 특히 그의 하얀 그림들은 이조백자의 흰색을 닮아 유백색에서 청백색까지 다양한 백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정상화는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에서 얼마 전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으며, 뉴욕 유명 화랑에서도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마크 로스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왜 정상화를 이야기하지 않을까.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지점장 wisha1133@hanmail.ne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