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핵무기 실험 잠정 중단 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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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4일 러시아 울란우데 외곽 소스노비 보르(소나무 숲)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벤츠 승용차를 타고 회담장을 나오며 러시아 관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김 위원장 옆에 동승한 여성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는 김옥이다. [울란우데 이타르타스=연합뉴스]


김정일(69) 북한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6)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시베리아 울란우데 근처 소스노비 보르(소나무 숲)에서 연 북·러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 문제와 함께 북한의 핵무기 생산과 핵실험 잠정중단(모라토리엄)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날 오후 2시에 시작한 회담은 두 정상의 독대로 진행됐으며 약 2시간10분 만인 4시10분쯤 끝났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김 위원장과 허심탄회하고 실질적인 대화를 했다”며 “북한이 자국을 거쳐 남한까지 이어지는 천연가스 수송관 연결을 지지함으로써 수송관 건설에 합의할 수도 있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내가 아는 한 북한은 (천연가스 수송관에 대한) 3자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탈리아 티마코바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회담을 마치고 “북한은 조건 없이 6자회담을 재개할 용의가 있으며 핵미사일 생산과 실험을 잠정중단할 준비도 돼 있다”고 전했다.

 메드베데프는 회담이 열리기 4시간 전인 이날 오전 10시 현장에 미리 도착했다. 김 위원장은 오후 1시50분쯤 검은색 벤츠 S클래스를 타고 경찰차 등 차량 30여 대의 경호를 받고 회담장인 제11공수타격여단 영내로 들어섰다. 벤츠가 1990년대 중반 모델이어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놀랐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전했다.

 이타르타스통신 등 현지 언론은 이날 회담이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짙은 청색 양복에 밝은 하늘색 넥타이를 맨 메드베데프는 김 위원장을 반갑게 맞으며 인사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만나서 반갑습니다. 10년 전에 처음 보고 다시 만나는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이에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 평양에서였죠. 그때의 따뜻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고 답했다. 메드베데프는 2000년 평양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정상회담에서 푸틴을 수행했다. 김 위원장은 “방문 일정이 계획대로 잘 진행됐느냐”는 메드베데프의 물음에 “상당히 즐겁고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 종료 뒤에도 잠시 소스노비 보르에 머물다가 오후 6시30분에야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타고 영내를 나왔다. 그 뒤 특별열차를 타고 울란우데역을 떠났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횡단철도(TSR)에서 만주횡단철도(TMR) 노선으로 갈아탄 뒤 중국을 거쳐 귀국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중국을 거치는 동안 중국 최고지도자급 인사와 현지에서 만날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고 중국 현지 소식통이 전했다. 27일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이 예정돼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만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울란우데(러시아)=임현주 기자

◆소스노비 보르(Sosnovyi Bor)=러시아어로 ‘소나무 숲’을 뜻한다. 부대가 약 20m 높이의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런 별칭이 붙었다. 과거 소련군 최고사령부 동부 참모부가 있던 곳으로 고위인사들의 만남을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1990년대 초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휴식을 위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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