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엄마와 함께] 까까머리 중1들 어른들 골탕먹이기 나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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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우리들의 7일 전쟁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양철북
332쪽, 1만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중1짜리 까까머리 남학생 22명이 빈 공장 건물을 점거하고 ‘해방구’를 만든다. 이 아이들, 1968년 일본의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전공투 세대가 낳았다. 부모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 ‘해방구’를 만들지만, 딱히 정치적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권력, 말하자면 어른들에게 맞서 아이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보면 재미있겠다는 아이디어에 1학년 2반 남자아이들이 전부 자발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아이들은 각자 재능을 살려 ‘해방구 방송’도 내보내고, 어른들을 골탕먹이기 위한 전략도 짠다. 아이들은 해방구를 이용해 권위적인 교장, 온갖 악랄한 체벌을 가하는 폭력 교사 등을 신나게 조롱한다. “너희를 위한 교육”이라는 입에 발린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해방구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아이들은 평소 털어놓지 않던 속내를 보이며 진정한 우정을 알게 되고, 제도권에선 드러나지 않던 재능도 발휘한다. 만화 같은 설정이긴 하지만 해방구의 아이들은 유괴당한 친구를 구해내고 불법 선거운동을 벌이는 권력자들의 비행을 고발한다.

 경찰의 진압이 예정된 1주일째, 아이들은 어른들 몰래 해방구에서 빠져나간다. 탈출 직전 마지막 해방구 방송에서 아이들은 이런 말을 남긴다. “우리 부모들도 지금은 타락했지만 젊었을 때는 꽤 멋진 일을 했군요.”

 일본에서 1985년 출간된 이 작품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고 한다. 권력에 대한 저항을 꿈꾸었지만 체제에 순응한 일본의 68세대와 한국의 386세대는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그들의 자녀 세대도 비슷한 처지 아닐까. 20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지금의 학부모나 청소년들에게도 유효할 듯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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