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백인사회 신물난 47명의 여성들 인디언 아내가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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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거스 지음
고정아 옮김, 바다출판사
500쪽, 1만3800원

신생독립국 미국이 서부에서 인디언을 한창 몰아내던 19세기 중반, 궁지에 몰린 샤이엔 부족의 족장이 기상천외한 제안을 한다. 평화를 위해 백인 여성 1000명을 인디언 전사(戰士)의 아내로 달라는 것. 실제 있었던 일이다.

  백인과 인디언 사이에서 태어난 수백, 수천 명의 2세들이 백인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될 경우 더 이상 싸울 일이 없지 않겠느냐는 계산에서다. 이런 엉뚱한 제안에 대한 백인들의 반응은 당연히 ‘노’.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평화회담은 결렬된다.

 소설의 설정은 여성들을 보낸다는 것이다. 망측한 제안에 한동안 홍역을 앓았던 미국사회가 좀 잠잠해지자 인디언 신부를 자원하는 여성들이 줄을 선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여성 근로자, 노예에서 해방됐지만 여전히 차별에 시달리는 소수의 흑인 여성, 남북전쟁이 양산한 과부들, 정신병원 수감자와 범죄자까지. 어떤 이유에서든 백인사회를 고집할 생각이 없는 여성들이 대거 지원한다. 첫 번째로 47명의 여성이 샤이엔의 땅으로 향한다.

 소설의 시작은 강렬하다. 샤이엔족 족장 일행이 워싱턴을 방문해 처음 백인 신부를 요구하는 장면 묘사가 압권이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술에 취해 인디언들을 맞았던 당시 대통령 그렌트는 뜻밖의 제안에 허둥대며 고함을 지르고, 영부인은 버펄로처럼 꾸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정신을 잃는다.

 신문들은 흥분해서 ‘미개인들, 백인 여성을 성 노예로 요구!’ ‘인디언과의 물물 교환:백인 처녀와 야생마!’ 식으로 대서특필하고, 정부는 들끓는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여성들을 지키겠노라고 발표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전되면서 소설은 차츰 차분해진다. ‘거친 자연 속에서 미개인과의 결혼생활’이라는 생사가 걸린 어려움을 앞에 둔 여성들 사이의 우정의 기록인 동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언의 풍습을 세세하게 전하는 인류학 보고서 같다. 어찌 보면 자족적인 자연 속 삶에 대한 예찬이기도 하고, 백인들의 잔혹한 인디언 토벌사를 고발하는 책이기도 하다.

 가령 샤이엔족 족장 리틀 울프와 결혼하는 여주인공 메이 도드는 남자 경험이 없는 다른 여성이 결혼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자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지극정성을 바치고 요리를 해주고 그들이 원하면 언제든 성교하되, 자신이 먼저 시작하거나 열망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거야.” 몸뚱이 하나와 보편적인 상식을 믿고 야만의 세계로 뛰어든 용감한 여성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소설은 메이가 남긴 일기 형식이다. 1875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샤이엔 마을에서 겪고 당한 일을 상세하게 전한다. 인디언 부족의 일상이 위주이다 보니 작품 전체 분위기는 잔잔한 편이다. 하지만 소설 뒷부분의 힘은 강력하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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